연중 3주간 목요일

2009. 1. 29. 오후 5:16:30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 저녁에 ‘인간과 개’라는 프로그램을 교육방송에서 방영했습니다. 개와 인간은 참 가까운 관계라고 말을 합니다. 사람들을 위해서 개는 많은 일들을 합니다. 뛰어난 후각으로 마약과 같이 소지해서는 안 되는 물건들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사냥개들은 사냥꾼을 위해서 먹이를 물어오기도 합니다. 추운 지방에서는 개들이 썰매를 끌기도 합니다. 개들은 집을 지키기도 하고, 소경들을 위해서 안내를 하기도 합니다. 외로운 사람들에게는 친구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전 세계에 4억 마리의 개가 있다고 합니다. 동물들 중에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것이 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 동네의 개에게 물린 경험이 있어서 개를 가까이 하지는 않지만, 요즘 많은 가정에서 개를 키우고 있으며, 우리 동네에도 주로 개를 위한 ‘동물 병원’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개들이 사람과 친해 질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에게 많은 것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개는 인간과 떨어져서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인간과 밀접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신학생들과 30일 피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4일 정도 있으면 피정도 끝납니다. 30일 동안 매일 만나서 대화를 하면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게 됩니다. 면담을 하면서 학생들의 성격과 취향을 알게 됩니다. 어떤 친구는 매우 모범적인 성향입니다. 규칙을 어겨서는 안 되고, 어른들의 말은 따라야 하고, 고통과 절망이 있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합니다. 이런 친구는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기적을 베풀어 주는 것에 대한 묵상은 쉽게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져야하고,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어떤 친구는 성격이 단순하고, 깊이 생각하기 보다는 느끼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 친구는 면담을 해도 길게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느낀 것만 간단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깊이 있는 묵상을 못한 것 같은데, 자세히 들어보면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 신앙은 단순하고, 느낌에 충실한 사람들이 더 쉽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친구는 성격이 밝고 매사에 적극적입니다. 30일 피정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피할 수 없는 일이면 즐기는 성향입니다. 면담도 재미있어하고, 이야기도 시원하게 합니다. 그렇게 밝고 적극적인 친구도,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깊은 슬픔을 느끼는 것을 봅니다. 피정을 이끌어 가는 분은 지도자도 아니고,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됩니다.

30일 동안 피정에 몰두하는 만큼, 자신을 하느님께 내어주고, 모든 것을 영의 이끌림에 따라가는 만큼 풍성한 결실을 맺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피정 중에 가장 필요한 것을 ‘열망’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열망과 갈망이 부족한 학생들은 기도를 해도, 성당에 있어도 큰 느낌이 없습니다. 자신을 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매일 혜화동에 있는 신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만나는 것도 ‘열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열망 때문에 저는 학생들을 통해서 오히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곤 합니다.

어제 자매님 한분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자매님의 품으로 올라 왔다고 합니다. 순간 놀라기는 했지만 자신의 품으로 올라온 강아지를 버릴 수가 없어서 집에 데려와 돌보고 있다고 합니다. 예방 접종도 하고, 목욕도 시켜주고, 물론 먹여주고, 재워주고, 따뜻하게 돌봐 주고 있다고 합니다. 만일 그때 그 강아지가 그 자매님의 품으로 뛰어 오지 않았다면 어쩌면 길에 버려졌을지도 모릅니다. 어제 방송에도 우리나라에만 1년에 10만 마리의 개가 버려진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갈망’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낮기를 원하느냐?, 믿느냐? 구하여라. 얻을 것이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찾아라. 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는 찾고 구하는 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화답송도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 이들이 주님의 얼굴을 찾는 세대이옵니다.”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도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가 고백하는 희망을 굳게 간직합시다. 약속해 주신 분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서로 자극을 주어 사랑과 선행을 하도록 주의를 기울입시다.”

신앙은 결단이고, 신앙은 갈망을 통해서 성장합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하느님께로 나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넘치도록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댓글 2

  • 2009년 1월 29일 오후 5:28

    너희가 되어서 주는만큼 되어서 받고.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것이다!찬미예수님!

  • 2009년 1월 29일 오후 9:3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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