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는 김연아 선수를 보았습니다. 참 아름다운 모습으로 연기를 하였고, 최고의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기분 좋아졌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연기를 보여 주기를 기대합니다. 세례명 ‘스텔라’처럼 희망과 기쁨을 주는 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침 뉴스에서 미국에서 8명의 쌍둥이를 낳은 여성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3명, 4명까지는 들어 보았지만 8명은 처음 듣는 말입니다. 뉴스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 여인은 아이를 낳는 것을 좋아했고, 8명의 쌍둥이는 의사들의 도움으로 모두 인공 수정을 했다고 합니다. 아이를 좋아하는 것도 그렇지만,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의 탄생이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것도 사람의 욕심에 의해서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제 동창신부와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강호순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방송에서, 신문에서 그의 얼굴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가족들은 고인의 원한을 달래주기 위해서 범죄자의 얼굴이 공개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런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범인의 얼굴이 공개되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그렇게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는지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원망은 원망을 낳고, 분노는 분노를 잉태하는 것은 아닐까, 욕심은 더 큰 욕심으로 변하지 않을까!’
며칠 전에 박신부님께서 ‘성시간’ 강론에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루가복음 15장의 돌아온 탕자는 둘째 아들의 입장에서 보지만, 사실은 아버지의 자비하심을 보아야 한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자비가 아들의 잘못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에 돌아온 아들은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돌아온 아들에게 옷과 신발, 반지를 주는 것은 아들의 권리를 다시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첫째 아들은 동생의 잘못을 받아들이고 용서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받아들입니다. 고개를 숙이고 땅을 바라보며 돌아온 아들은 아버지를 보지 못하지만, 언제나 아들이 돌아올 길목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먼저 아들을 보았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아들의 잘못을 덮어줄 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들이 잘못된 길을 갈지라도, 우리가 하느님을 원망하고 하느님 곁을 떠날지라도, 서로 싸우고 다툴지라도, 하느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실 거라고 이야기 합니다. 길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에게 천 원짜리 하나를 주면서도 고민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술 한 잔 마시는데 껌이나 초콜릿을 팔러 오는 사람을 보면서도 잠시 고민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람이 되시겠다고 결심을 하십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이라고 합니다. 그 평화는 끝이 없으며 만군의 주님이 이를 이룰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출 것이라고 합니다.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 볼 것이라 말을 합니다. 오늘의 복음은 그 구체적인 사건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는 사건입니다. 그 사실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리아의 순명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작년 이맘 때, 600년을 지켜오던 남대문이 화재로 사라졌습니다. 경제위기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화재의 현장에서 소중한 생명이 사망했습니다. 한 사람의 잔혹한 범죄로 억울한 생명이 죽었고, 가족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이야기 합니다.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던 아버지가 이제 우리 곁에서 사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하느님의 사랑이 크시기 때문입니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하게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웃이 많이 있습니다.
희망은 희망을 낳고, 사랑은 더 큰 사랑을 가져오며, 모든 것을 믿고 따르는 순명은 구원의 역사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