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가정방문을 다녀왔습니다. 새로 전입오신 분들의 가정에 가서 함께 기도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전입 교우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였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밀알 하나로 남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한 가정이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그 집안에 시집온 며느리가 온 가족들을 신앙인으로 변화 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이, 다음에는 자녀들이, 그리고 남편의 형제들이, 맨 나중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가정에 시집온 며느리는 큰 힘이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죽이고, 온전히 가족들과 시댁 식구들을 위해 헌신했기 때문에 남편과 가족들이 변화되었을 것입니다. 어제 가정방문을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집안이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은 시집온 며느리 때문입니다.’
어제 방문한 집에서는 딸과 아빠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직 신앙을 갖지 않았던 아빠를 위해서 딸이 매주 아빠와 함께 교리 반에 가서 교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딸은 바쁜 시간 중에도 아빠가 신앙생활을 시작할 수 있도록 자신의 시간을 내 주었습니다. 교리 반에 아내가 남편을 위해서 남편과 함께 교리를 받는 경우를 종종 보았습니다. 하지만 딸이 아빠를 위해서 매주 교리 반에 나오는 것을 본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가족을 위한 희생과 사랑이 있기에 온 가족이 신앙 안에서 기쁜 생활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본당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처음 한두 번은 남을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 주일, 남을 위해서 봉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가 아는 한 형제님은 매 주일, 다른 분들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오셔서 회합 실을 청소하십니다. 1년이 넘었는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청소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이 왔다 가면 지저분했던 회합 실이 깨끗해집니다. 누가 보지 않아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기쁜 마음으로 청소를 하시는 형제님께 사랑과 존경을 드립니다.
어제 ‘생로병사의 비밀’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장기기증’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사람의 장기는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의 기증에 의해서 이식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장기의 손상으로 병중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의 기증이 있으면 다시 건강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안구기증은 장기 손상으로 투병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합니다. 장기기증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좋아져서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장기기증을 하겠다고 신청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누군가를 위해서 밥이 되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의 욕심을 채우기 보다는 나 자신을 죽이고 다른 이들이 드러나게 해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무가 우뚝 설 수 있는 것은 땅 속 깊이 양분을 찾는 ‘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건물이 바로 설 수 있는 것은 바닥에 있는 모퉁이 돌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드러나는 것은 화려한 건물이 있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서 ‘밥’이 되어주고,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나누어 주는 참된 신앙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 저 높은 곳에 너희 목소리를 들리게 하려거든, 지금처럼 단식하여서는 안 된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그릇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그릇에 무엇을 채우는 가입니다. 나의 몸을 채우는 것이 ‘사랑, 자비, 희생, 나눔’이 될 때 우리는 진정한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