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事必歸正’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길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또한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말이 있는데 토끼가 죽으면 토끼를 잡던 사냥개도 필요 없게 되어 주인에게 삶아 먹힌다는 뜻으로, 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 없게 되면 내어버린다는 말입니다.
성서를 통해서 우리는 사필귀정과 토사구팽의 원리가 함께 적용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물론 성서의 기본 원리는 사필귀정입니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만약 그 누구라도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의 생각대로 이끌려 가면 결국 그는 ‘토사구팽’이 될지도 모릅니다.
오늘 성서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희는 동포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명한 ‘최후의 심판’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교회는 장례미사 때, 오늘 복음의 말씀을 읽습니다. 지금 하느님 품으로 가는 마지막 길에 있는 고인이 생전에 어떻게 살았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평소에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면, 병들고 지친 이웃들과 함께 했다면 하느님 품 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이라는 말입니다. 생전에 자신만을 알고, 가난한 이웃들을 돌보지 않았다면, 병든 이들을 외면했다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고인이 된 사람은 장례미사 때 들려주는 이 말을 듣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장례 미사 때 이런 복음을 읽는 것은 지금 살아서 이 복음을 듣는 우리들이 복음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는 것입니다.
어제 전진상 의원에 계신 할아버지를 위해 병문안을 갔었습니다. 병상에 누워서 가쁜 숨을 몰아쉬시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함께 기도하러 가셨던 분들이 많이 울었습니다. 저도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몇 달 전만 해도 건강하셨던 분이셨습니다. 병상에 누워 힘없이 저를 바라보시는 눈빛이 기억납니다. 지금은 건강하지만, 우리 모두는 언젠가 할아버지처럼 누군가가 도와주어야만 일어날 수 있고, 조용히 지난 삶을 돌아보며 하느님의 뜻을 기다려야 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달릴 길을 충실하게 달리셨던 할아버지께서 건강을 회복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제방에서 창문을 보면 성모상 앞에 놓인 초들이 있습니다. 주일 저녁에 신자 분들이 소망을 담아 켜 놓은 초들이 바람에 밝게 빛이 납니다. 다음날 새벽미사를 위해서 일어나 창문을 보면 밤새 켜있던 초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다 마치고 꺼져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타오르고 재만 남는 초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사필귀정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끝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3월에 새로운 학년이 시작됩니다. 학생들은 새로운 마음으로 학교에 가고, 친구들을 만날 것입니다. 오늘 처음 만나는 선생님과 친구들 새롭게 정해진 반에서 열심히 공부하리라 다짐할 것입니다. 그 마음대로 하루를 충실하게 살면, 다음 해 새롭게 시작되는 학년에는 많은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 사순시기를 시작했고, 3월 달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하루를 주님의 뜻에 따라서 산다면, 오늘 하루가 즐겁고 행복했다면 언젠가 우리에게 올 그 순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오늘이 모여서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모여서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모여서 일 년이 되기 때문입니다.
“ 지금이 바로 은혜로운 때이며,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