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릴 때, 선생님들은 화장실도 가지 않으시는 줄 알았습니다. 선생님들은 모든 것을 알고, 아무런 걱정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선생님들도 화장실도 가셔야 하고, 아프면 병원도 가시고, 걱정과 근심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제가 되기 전에는 사제들은 다 거룩하고, 마음도 넓고, 모든 것을 감싸주고, 용서하며, 사랑이 많은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제가 되고 나서, 사제들도 똑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희로애락’ 앞에서 기뻐하기도 하고, 슬플 때는 울고, 화날 때는 표정이 바뀌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지난번에 김수환 추기경님을 위한 장례미사에서 강우일 주교님께서 ‘고별사’를 하셨습니다. 몸이 쇠약해지셔서, 혼자서는 화장실도 갈 수 없게 된 추기경님을 보면서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고 하였습니다. 추기경님처럼 훌륭하신 분이 저렇게 힘든 고통을 당하시니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얼마나 큰 보속을 받아야하는지 걱정이라고 하였습니다. 한국 교회의 큰 어르신이었던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도 다른 노인들처럼 그렇게 아프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화장실도 가고, 하느님의 품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유명한 인물들들 봅니다. 모세, 아브라함, 다윗, 베드로, 바오로와 같은 분들도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지나치게 세심했고, 남을 잘 믿지 못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내를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이집트의 왕 파라오에게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바쳤습니다. 다윗은 충실한 부하 우리야의 아내를 탐했고 우리야는 전쟁터에서 죽도록 만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했었습니다. 바오로는 예수님을 믿던 사람들을 잡아들였고, 스테파노를 죽일 때 옆에서 동조했었습니다.
우리가 성서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을 따르기를 원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위대한 성서의 인물을 따른다는 것은,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우리의 잘못들과 약점들, 그리고 우리가 가진 능력들과 더불어 하느님께서 내가 하길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의 목적은 무엇인가를 언제나 새롭게 물어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느님 앞에 나의 잘못들조차 있는 그대로 다 열어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나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는 완전하지 않은 존재이기에 다른 사람의 불완전한 처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단순히 다른 사람 위에 서지 않으려 하기보다는 그의 잘못도 용서하는 자비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시는 자비로운 하느님을 선포하셨습니다. 완벽하기를 바라기 보다는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며, 내가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하느님께서 나를 용서하기를 청하며, 나 또한 나와 더불어 사는 이웃들과 화해하고, 사랑을 나누어야합니다.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우리가 완벽하기 때문에 하느님께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족함까지도 다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 겸손되이 용서를 청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