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매일 아침 창문을 통해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학생들이 학교 가는 길에 떠드는 소리입니다. 방학이라서 듣지 못했는데, 개학을 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다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저도 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면서 다녔습니다. 예전에 라디오 광고에 지금은 듣기 어려운 아름다운 우리의 소리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소리가 있었겠습니까? 제게 기억에 남는 소리는 어머니들이 빨래를 다듬던 다듬이 소리였습니다. 겨울 저녁이면 더 구수하게 들렸던 ‘메밀묵, 찹쌀떡’ 소리, 아침에 쓰레기 치우는 차에서 들렸던 노래소리도 있습니다. 우리 동네 쓰레기차는 명곡을 틀어 주었습니다. ‘소녀의 기도, 엘리제를 위하여’와 같은 노래였습니다. 시냇물 흐르는 소리, 대나무 밭에서 바람이 만들어 내는 소리, 논에서 들리던 개구리 소리도 있습니다.
바쁘게 살면서, 우리는 아름다운 소리들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듣지 못하기도 합니다. 저는 가진 것이 많지 않지만 이사 갈 때, 꼭 가지고 다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진을 모아 놓은 ‘앨범’입니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도, 사진을 보면 기억이 나고, 그때 있었던 일들도 어제 일처럼 생각이 납니다. 지난번에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생전의 모습들도 사진을 통해서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마산에서의 사목, 서울로 올라오셔서 보냈던 시간들, 은퇴하셔서 생활하시던 모습들을 사진을 통해서 생생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한편의 그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들을 데리고 묵묵히 산으로 올라가는 아브라함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산에 오르는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하느님께 바치려하고, 아들은 아직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드디어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할 때, 천사가 아브라함을 말리며, 제물로 쓸 ‘양’을 줍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 줍니다. 아들까지 제물로 바치려는 믿음을 보여 주었으니,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많은 축복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 성서 말씀에서 아들까지 제물로 바치려하는 아브라함이 비정하다고 하는 생각, 죽을지도 모르고 아버지를 따라가는 아들 이사악이 불쌍하다고 하는 생각은 올바른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생각이야 할 수 있지만 오늘 성서가 이런 말씀을 우리에게 드려주는 것은 아버지의 비정함, 아들의 불쌍함은 아닐 것입니다. 삶의 기준이 ‘하느님의 영광’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느님의 영광’을 따르기 보다는 나의 ‘욕심’을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혀가자 뿔뿔이 도망을 갔던 제자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겠다고 했던 베드로는 3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재물 앞에서, 명예 앞에서, 권력 앞에서 우리들의 신앙은 너무나 약해지곤 합니다. 추기경님의 선종과 장례를 보면서 오랫동안 성당에 다니지 못했던 분들이 다시 성당으로 오는 것을 봅니다. 작은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신앙을 포기하고, 냉담을 하였던 분들도 있습니다. 목숨까지 바쳐서 지켜야 하는 신앙이, 가장 소중한 아들까지도 제물로 바치며 따라야 했던 신앙이, 나의 자존심 때문에, 시기와 질투 때문에 약해지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더욱 멋진 그림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 3명을 데리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산에 오르자 분위기는 바뀌고 예수님의 모습은 거룩하게 변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깜짝 놀라서 예수님을 바라보는데 더욱 놀라운 일들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선조들 중에 가장 위대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 여기에 초막 3개를 지어서 살고 싶습니다. 하나는 예수님, 다른 둘은 모세와 엘리야께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이 복음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환하게 변하셨을 때 입었던 옷의 재질은 무엇인지, 제품은 어디 것인지를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산위에 지을 초막의 가격은 얼마일지, 앞으로 가격이 오를지, 내릴지를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시흥5동 성당이 세워지기 전에 이곳은 동네 야산이었다고 합니다.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성당을 세우기 전에 우리는 먼저 ‘설계를 하였고, 조감도’를 그렸을 것입니다. 설계와 조감도를 보면서 앞으로 이 야산이 신앙 공동체가 모여서 기도할 아름다운 성전이 되리라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성전이 세워지기 위해서 많은 날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의 반대도 있었습니다. 구청에 가서 우리들의 주장을 호소하는 데모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하나의 추억으로 이야기 하지만, 그때는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앞으로 힘들고 어려운 날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믿고 따른다면 지금 본 것처럼 행복한 날, 축복의 날, 하느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삶이 있을 것이라고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며칠 전에 읽은 글이 생각납니다. ‘잔잔한 파도는 훌륭한 뱃사공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산이 깊어야 계곡의 물도 마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우리를 편안하게 하고, 풍요롭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친 파도를 헤치면서 사공은 배를 운전하는 법을 배우듯이, 우리들은 세상의 시련과 갈등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이 시련과 갈등은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 시키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당신의 친 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바오로 사도는 오늘 우리에게도 똑 같은 말을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누가 우리를 하느님께로부터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어둠도, 칼도, 굶주림도, 헐벗음도, 죽음도’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