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라는 말은 법관들이 생명처럼 여기는 말이라고 합니다. 법관은 자신의 판결에 따라서 사람들을 교도소로 보내기도 하고, 가족들의 품으로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판결은 정의로워야 하고, 공정해야 합니다. 법원에 가면 ‘저울’이 상징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정확한 저울의 눈금처럼 그 판결은 한결같이 정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대법관이 부장 판사 시절에 보냈던 ‘E -mail'이 파문이 되고 있습니다. 법과 양심에 따라서 판결을 내려야 하는 법관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메일을 받았던 판사들이 이야기함으로써 세상에 알려 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법은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 졌다는 말입니다. 그 법이 잘못 사용되면 무고한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기도 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의 역사를 보아도 잘못된 판결이 참 많았습니다. 법관들이 법을 몰라서가 아닐 것입니다. 법관들이 지혜롭지 않아서가 아닐 것입니다. 법관들이 법을 적용하기에 앞서 또 다른 힘 앞에 굴복했기 때문입니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와 같은 것들은 과거에 억울하게 판결을 받았던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조직입니다. 잘못된 판결을 한 사람들을 단죄하는 것보다는, 진실을 밝혀주고 억울한 이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가족들에게도 위로를 주기 위한 조직입니다.
2000년 역사를 지닌 교회도 ‘법과 규율’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법은 세상의 법보다 더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교회 조직, 성사, 사람에 대한 법들이 있습니다. 저도 신학교에서 교회법을 3년 동안 배웠습니다. 법은 신앙을 보호하고, 신자들이 하느님과 멀어지지 않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법도 예수님의 말씀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날 교회가 잘못 판결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전임 교황님께서는 교회가 잘못 판결한 사건들에 대해서 ‘용서’를 청하였고, 세상 사람들은 교황의 진실한 행동에 대하여 존경과 사랑을 보내 주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모세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십계명’의 이야기입니다. 며칠 전 평화방송에서 차동엽 신부님께서 강의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에제키엘 예언자와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나 이제 너희에게 숨을 불어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 너희에게 영을 불어 넣어 주어 너희를 살게 하겠다.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에제 37, 6)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나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차 신부님은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우리들의 마음이 하느님의 영을 받아 뜨거워지면 ‘십계명’은 힘들고 어려운 계명이 아니라, 우리를 지켜 주는 계명,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 주는 아주 쉬운 계명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져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체험한다면 계명은 우리를 억압하고,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계명은 가장 최소한의 것들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가슴이 뜨거워진 사람은 십계명뿐만 아니라, 그것보다 더 힘든 것들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 교회는 ‘내 탓이요.’운동을 하였습니다. 차에다 ‘내 탓이요.’라는 스티커를 부착하고 다녔으며, 우리 사회는 교회의 이런 운동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서로를 탓하고,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것보다는 우리 스스로 자신의 허물을 먼저 반성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때 사회가 치유되고, 통합되는 것을 체험했고, 불신과 분노와 미움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난번에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마지막 말씀을 적은 스티커를 차량에 부착하는 운동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스티커에는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그리셨던 자화상 ‘바보야’의 그림이 있고, 추기경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이 적혀있습니다. 하느님의 큰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우리는 어쩌면 모두 바보가 아닐까 생각하며, 모든 것을 고마워하며, 사랑할 수 있다면 십계명은 그렇게 어려운 계명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형제 여러분 ,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들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합니다.”
세상에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고 가셨던 십자가는 모든 역경과 고통을 이겨내는 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