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꽃샘추위가 왔습니다. 바람이 불고, 춥습니다. 어제 한 형제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였습니다. ‘옷장에 넣어둔 겨울옷을 다시 꺼내야 겠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 더욱 건강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합니다.
어제는, 박정우 신부님께서 '인간의 고통과 죄에 대한 성찰‘이라는 주제로 사순특강을 해 주셨습니다. 명쾌한 논리와 해박한 신학지식으로 어려운 주제를 이해하기 쉽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신부님의 말씀은 크게 4가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첫째, 행복이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행복은 ‘충만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반대로 ‘결핍’은 우리를 행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충만함에는 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본능에 충실한 충만함입니다. 배불리 먹고, 등 따뜻하며, 성적인 욕망을 채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동물적인 충만함이고, 인간은 이것만으로는 참된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합니다.
명예, 권력, 돈, 건강을 통해 주어지는 충만함입니다. 이것들은 모두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조건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외부에서 오는 이와 같은 것들이 사라질 때, 행복은 연기처럼 사라진다고 합니다. 연예인들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인기가 식어지면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는데, 이것은 외부에서 오는 충만함은 우리를 지속적으로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돈, 권력, 명예는 우리를 풍요롭게 할 수는 있지만, 참된 행복으로 이끌어 주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덕행을 행함으로써 주어지는 충만함입니다. 선을 행하고, 인간답게 살 때 참된 행복에 이르게 된다고 합니다. 위대한 성인들, 스스로 충만함을 만들어냈던 사람들은 참된 행복에 이르렀고, 우리들은 바로 이와 같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참으로 인간답게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며, 충만함이라고 합니다.
둘째, 인간이란 무엇인가? 물건은 만든 회사가 있듯이, 작품은 만든 사람이 있듯이, 인간은 스스로 생긴 것이 아니라, 인간을 만드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성서의 창세기는 인간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 하느님은 어떤 분인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하느님은 자비하시며, 하느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닮은 모습으로 인간을 만들었다고 창세기는 말을 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사랑을 하고, 자비로우며, 선하게 살 때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아담을 만들었고, 아담이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며, 선을 행할 수 있도록 배우자인 하와를 만들어 주셨다고 합니다. 짐승과 동물을 통해서는 이룰 수 없는 참된 사랑을 배우자를 통해서 실현할 수 있도록 하와를 만들어 주셨다고 합니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조화를 이룰 때 진정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알몸이었지만 부끄럽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육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서로의 인격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알몸은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고, 상대방에 대한 적대행위를 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의 중심은 하느님이고, 하느님은 선과 악의 기준이고, 하느님을 따르는 것이 가장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셋째, 인간은 선과 악의 기준인 하느님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선과 악을 만들어가는 잘못을 범했는데 그것이 ‘죄’입니다. 사탄은 인간을 유혹합니다. 하느님이 먼저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으며, 인간 스스로 지혜롭게 될 수 있다고 유혹을 합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자리에 자신의 욕망을 놓았으며, 하느님을 따르기 보다는 자신의 의지와 힘을 따르기 시작했으며 그로인해 하느님과 멀어지고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선악과는 과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따르지 않았던 인간의 행위가 바로 선악과이며 그런 행위가 죄이고, 죄의 결과는 고통과 죽음입니다. 인간은 이제 서로 알몸인 것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제 서로의 인격을 보기보다는 서로를 이용하고, 서로를 지배하려고 하기 시작합니다. 이로 인해 고통과 좌절, 절망과 분노가 시작되었습니다.
넷째, 죄의 결과인 고통과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자동차가 고장 나면 정비소에 가듯이 사람은 죄로 인해 고통과 죽음이라는 병에 걸렸다면 사람을 만들어 주신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느님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 하느님을 찾는다면,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 주시고, 우리는 진정한 충만을 통해서 참된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죄를 지었다면 새로운 아담과 하와인 예수님과 성모님은 하느님께 대한 순명으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박신부님께서 설명하신 참된 행복에 이르는 길을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해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은 외적인 것을 통해서 행복에 이르고 싶어 했습니다. 바로 돈, 명예, 권력입니다. 외부에서 오는 충만함이 사라졌을 때, 둘째 아들은 곧 불행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들은 절반의 행복만 주기 때문입니다. 절망과 고통 중에 둘째아들은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만이 자신을 고통과 절망으로부터 구원해 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컸지만 참된 행복을 갈망하기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버지는 둘째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따뜻하게 맞이합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할 때, 비로소 참된 인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돌아온 둘째 아들을 대하는 큰 아들을 봅니다. 큰 아들의 가장 큰 잘못은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동생을 받아들이고 아낌없는 사랑을 주시는 것, 그와 같은 판단을 하는 분도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로 큰 아들처럼 우리가 하느님을 우리의 기준으로 우리의 잣대로 규정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하느님을 따르면서 나의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선하심에 맡겨드릴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