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새벽에 고대 구로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세례를 받지 않은 형제님께서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받지 않으면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할 수 없습니다. 예비자 교리만 받았어도 장례미사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세례를 받는 것이 커다란 은총이라는 것을 오늘 알 수 있었습니다.
옆에 빈소에서는 교우들이 찾아와서 ‘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세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연도를 하는 분도 없고, 쓸쓸했습니다. 세상에서 세례를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의 차이가 이렇게 큰데 하느님 나라에서는 신앙인으로 살았느냐, 아니냐는 더 큰 차이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행복한 분들입니다. 세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체칠리아 성녀 축일입니다. ‘체칠리아’라는 말은 ‘천상의 백합’을 의미합니다. 성녀는 흔히 비올라나 작은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묘사되며, 음악인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 받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모진 박해를 받았지만, 천상에서는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살고 있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를 볼 때가 있습니다. 아무런 힘도 없고, 누군가 보살펴 주지 않으면 하루도 살기 어려운 아기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도 시간이 지나면 혼자서 걸을 수 있고, 말도하며, 자신의 앞길을 헤쳐 나가는 것을 봅니다. 이것도 커다란 신비입니다. 아이는 부모님의 사랑과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납니다.
아이들의 돌 때, 가족들은 ‘돈, 실, 연필, 그림’ 같은 것을 보여주고 어느 것을 아이가 선택하는지 보고 기뻐합니다. 돈을 잡으면 부자가 될 거라고, 실을 잡으면 오래 살 거라고, 연필을 잡으면 공부를 잘 할 거라고, 그림을 잡으면 예술가가 될 거라고 기뻐합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변하는 것은 ‘나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이는 기어 다니다가, 걸어 다니게 됩니다. 그것만 보고도 부모들은 얼마나 기뻐합니까! 나비는 땅위를 기어 다니는 애벌레에서 하늘을 날아다니게 됩니다. 그 변화는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우리 눈에 징그럽게 보이는 애벌레가 아름다운 날개를 지닌 나비가 된다는 것을 직접 보기 전에는 믿기가 어렵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활 이후’의 삶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간난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믿으면 아나니, 그때 아는 것은 예전에 아는 것과는 다르다. 사랑하면 보이나니, 그때 보는 것은 예전에 보는 것과는 다르다.” 하느님을 믿으면서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분노와 미움, 증오와 불만에서 사랑과 용서, 겸손과 친절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천상에서 우리가 살아갈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