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2주간 목요일

2008. 11. 13. 오후 5:23:36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27년 전, 저도 대학입학 학력고사를 보았습니다. 시험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파도가 밀려오듯이 또 다른 도전이 제 앞에 있었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해서 공부를 하는데, 군대를 가야했습니다. 3년간의 군대생활이 끝나면 정말 이제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학교에 복학하니, 대학원 종합시험을 보아야 했습니다. 종합시험도 마치고, 드디어 사제 서품을 받으면 이제 더 이상 힘든 일은 없을 줄 알았습니다.

보좌 신부 생활 8년을 하면서 본당 신부만 되면 정말 행복이 시작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본당 신부를 하니까, 보좌 신부 때와는 다른 도전과 고민이 생겼습니다. 전에는 본당 신부님이 말씀 하시는 것을 주로 따라서 하면 되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을 제가 판단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좋은 면도 있지만, 때로 아쉬움이 남을 때가 많습니다. 아마 제가 어떤 일을 해도, 제 앞에는 도전이 있고, 풀어야 할 숙제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수학능력 시험을 본 수험생들도 며칠은 시원하고, 즐겁겠지만 수험생들 앞에는 또 다른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천년도 당신 앞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나이다.’ 인생은 풀잎 끝에 맺혀있는 이슬방울과 같다고 했습니다. 날이 밝으면 말라버리는 이슬처럼 우리의 인생은 덧없다고 합니다. 주어진 일을 해결하는 것은 끝이 없습니다. 시간과 공간 앞에서 우리는 참된 진리를 찾기가 힘이 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수학능력 시험을 보는 것처럼 공부를 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우리들 가운데 있다.’라고 하십니다. 떨어지는 낙엽을 손으로 만져 볼 때,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잠시 고향을 생각할 때, 삶이 너무 고달파 눈물 흘리는 이웃의 손을 잡고 함께 울어 줄 때,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하십니다.

성공이라는 사다리를, 권력이라는 사다리를, 욕망이라는 사다리를 무작정 올라가는 사람들은, 그 앞에 있는 사람을 밟고서 올라가는 사람들은,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을 밀쳐내는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를 결코 볼 수 없다고 하십니다. 타인을 위해서 배려를 하는 사람, 나의 것을 나누면서 뒤에서 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서로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를 지금 여기에서 볼 수 있다고 하십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 나라를 말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종이었지만, 신앙 안에서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믿음과 사랑 때문에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지고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오히려 기쁨이라고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경쟁과 발전의 논리로는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주님과 우리가 모두 한 몸이고, 한 지체라는 관계의 논리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래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이것을 ‘인간 존엄성의 원리, 연대성의 원리, 보조성의 원리’로 발전시켰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고, 내가 소중한 존재인 만큼 타인도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한쪽이 차고 넘치면 다른 한 쪽은 부족하니 그것을 나눌 줄 알 때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고, 하느님 나라에서 사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댓글 2

  • 2008년 11월 13일 오후 6:29

    하느님 나라는 바로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아멘!!

  • 2008년 11월 15일 오전 12:5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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