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읽은 책 중에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가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입니다. 근육 무력증으로 혼자서는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분이 살아가는 이야기, 세상의 명예보다는 나눔과 희생의 삶을 선택한 분의 이야기, 장애아를 출산한 분의 이야기들입니다. 글을 쓴 모든 분들은 많은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아픔을 딛고서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분들의 삶을 보면서 저는 무척이나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수학능력 시험이 조금 어려웠다고 합니다. 많은 학생들이 생각보다 점수가 적게 나왔다고 걱정들을 합니다. 어떤 학생들은 평소 실력보다 점수가 나오지 않았고, 시험 날 너무 긴장해서 시험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도 했을 겁니다. 어린 학생들에게는 어쩌면 너무나 큰 시련이고 아픔일 겁니다. 학생들의 부모님들도 말은 하지 않지만 학생들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험을 잘 못 본 것은 장애인 자녀를 둔 것보다는 덜 아픈 일입니다. 회복할 수 없는 병을 간직하고 사는 것보다는 덜 슬픈 일입니다.
예전에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시험을 잘 못 보았어도, 위로해 주고, 다음에 잘 하면 된다고 말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부족하고 허물이 커도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라고 말해 주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12구역에서 국수 봉사를 하였습니다. 한 자매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도시 생활의 각박함 속에서 이렇게 함께 모여 봉사를 하는 것도 하느님의 큰 은총입니다.’ 국수 봉사를 마치고 생일을 맞이하는 자매님을 위해서 케이크를 준비하고, 정겨운 시간을 함께하는 것을 보니 참 아름다웠습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은 바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성녀 엘리사벳은 공주로 태어나서 3자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았지만 남편이 전쟁터에서 죽자,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그들의 벗이 되어 살았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커다란 아픔을 이겨내고,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며,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눈이 먼 소경의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소경은 눈이 멀었지만, 마음의 눈도 멀었습니다. 아무도 소경과 친구가 되어 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소경이 불렀을 때,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소경을 바라보았을 때, 소경은 이미 치유를 받았습니다. 소경은 영광을 보았고, 즉시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한 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누군가 나를 보고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라고 말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