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07년 9월 18일에 시흥5동 성당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9월 23일에 환영미사와 영명축일 미사를 함께 했습니다. 본당에 부임한지 1주일도 안 되는데 축일 축하금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때 사목회장님께 제가 받았던 축하금을 본당 건축헌금으로 드렸습니다. 본당 교우분들께서는 저의 그런 마음을 알아 주셨고, 매년 축일이면 기쁜 마음으로 축하금을 주셨습니다. 저는 5년 동안 있으면서 제가 받았던 축하금을 모두 건축헌금으로 봉헌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 큰 축복을 받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도 체험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보좌 신부님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고, 작년에는 성모동산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었고, 특히 저의 아버님께서 선종하셨을 때, 본당 교우들께서 아버님을 위해서 기도해 주셨고, 장례를 잘 마칠 수 있도록 함께 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것만으로도 넘치는 사랑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많은 어르신들께서 고백소에 들어오셔서, 성사를 보시고 작은 틈으로 봉투를 주고 가셨습니다. 어르신들의 따뜻한 마음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재물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재물의 노예가 되는 것이 나쁜 것입니다. 재물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줄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줍니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 병중에 있는 사람,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물은 약이 될 수 있고, 빵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재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을 유익한 곳에 쓸 수 있어야 하고, 감사하면서 쓸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재물은 중독성이 있어서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어집니다. 재물에 중독이 되면 가족도 몰라보고, 하느님도 몰라봅니다. 인간의 도리인 양심도 팔아먹게 됩니다. 우리는 재물을 취하되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쓸 수 있는 지혜를 청해야 합니다.
많은 賢人들은 우리를 구속하는 것들 중에 가장 커다란 것은 ‘욕심’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욕심을 버릴 줄 안다면, 비록 배움이 적다할지라도, 큰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할지라도 우리는 삶의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방글라데시나 인도에는 오랜 세월 가난하게 살아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삶을 부정하거나,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마음의 평화를 누리면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어쩌면 스스로 자신의 잎을 떨구어 내는 나무처럼 욕심이 적기 때문입니다.
욕심은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하게 우리를 막기도 합니다. 욕심이 없었다면 이웃과 잘 지낼 수 있는 일들도, 욕심 때문에 원망과 미움을 키워내기도 합니다. 욕심은 평화로운 가정을 엉망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권력이 주어지면, 그런 사람들에게 명예가 주어지면, 그런 사람들에게 재물이 주어지면 주변에 있는 이웃들과 나누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것들을 더욱 채우려하기 때문에 원망과 불평이 더욱 커져 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런 욕심을 가진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