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소는 송아지일 때 코를 뚫어서 고삐를 걸어 맵니다. 소는 아이들의 손에도 고삐를 잡아 주면 말을 듣습니다. 소에게 고삐는 꼼짝 할 수 없는 굴레이면서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믿음 줄이기도 합니다. 주인은 고삐를 잡고 소에게 일을 시키고, 풀을 먹게 하고, 안전하게 쉴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요즘 한창인 올림픽에서도 선수들이 꼼짝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경기의 규칙입니다. 설령 그 규칙이 잘못되었다 해도 선수들은 그 자리에서 항의를 하지 못합니다. 규칙을 어기면 선수들은 실격처리가 되기도 합니다. 규칙을 몇 번 어기면 퇴장을 당하기도 합니다. 규칙은 선수들에게는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규칙은 선수들의 안전을 지켜주기도 합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문제가 된 것은 규칙이 아니었습니다. 그 규칙을 집행하는 심판의 자질의 문제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법과 규칙을 잘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마치 소처럼, 옹기장이의 손에 있는 진흙처럼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하지만 우리들에게 소와는 다른, 옹기장이의 손에 있는 진흙과는 다른 것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유의지입니다. 소는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없습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선수들은 경기의 규칙을 어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과 우리는 그런 순종과 명령의 관계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신뢰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큰 축복이기도 합니다. 그런 자유와 결단은 문명을 만들었고, 역사를 만들었고, 수많은 도전을 이겨낼 수 있는 기술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순간을 살면서도 영원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면 또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의미 없는 100년보다는 의미를 추구하는 10년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는 유혹이기도 하면서, 우리를 파멸의 길로 이끌기도 하는 것입니다. 자유의지는 희망과 발전 그리고 역사와 문명을 가져왔지만 자유의지는 탐욕과 욕망을 가져왔습니다. 소유와 집착을 가져왔습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인격을, 하느님을 닮은 모상을 너무나도 쉽게 재물과 명예 그리고 권력이라는 유혹과 바꿔 버리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제1독서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옹기를 만드는 사람과 진흙으로 비유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 전적으로 순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자유를 주셨음을 이야기 하십니다. 또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벗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자유는 책임을 만나면 발전과 진보를 만들어 냅니다.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신앙이 그랬습니다. 다윗의 통치가 그랬습니다. 하지만 자유가 방종을 만나면 혼돈과 파멸을 만들어 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그랬고, 바벨탑이 그랬고, 노아의 홍수가 그랬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