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5주일

2012. 7. 15. 오전 5:14:45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농민주일’입니다. 농부들은 가뭄이 들어도 걱정, 비가 많이 와도 걱정입니다. 자식 같은 작물들이 피해를 입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것들, 우리를 건강하게 해 주는 먹거리를 마련해 주시는 농부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 미사를 시작합니다. 우리 성당의 성모 동산에도 농작물이 몇 가지 있습니다. ‘깻잎, 가지, 오이, 상추, 방울토마토, 고추’가 자라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은 작은 기쁨입니다.

오늘 성서 말씀의 주제는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려 주셨고, 우리에게 권한과 능력을 주셨다.’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따를 수도 있고, 우리의 판단에 따라서 우리의 뜻대로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다르다는 것을 성서와 역사는 우리에게 명확하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동양에서 맹자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심성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양심’이라고 부릅니다. 동물과 식물들은 본능에 따라서 살아가지만 사람들은 양심에 따라 산다고 하였습니다. 맹자는 그것을 4가지로 설명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부끄러움을 아는 ‘수오지심’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은 ‘인면수심’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마음은 동물과 같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역사가 프랑스와 다른 것은 프랑스는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알았고, 나치에 협력한 사람들을 엄정한 법에 의해서 처벌하였습니다. 우리는 부끄럽게도 일제에 협력한 친일파들을 처벌하지 못하였고, 친일파들은 그들의 권력과 금력을 이용해서 아직도 득세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낮추는 ‘사양지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사람의 아들로 오셨고, 모든 것을 가지셨지만 섬기는 사람이 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일등만을 인정하고, 기억하는 우리들의 가치와 생각은 인간의 본성도 아니고,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사는 사람은 물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다고 했습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그런 사람들에게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탐욕과 이기심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습니다. 물가에 세운 모래성과 같습니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불빛을 보고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그렇게 탐욕과 이기심을 가지고 욕망의 불꽃으로 날아가곤 합니다.
세 번째는 불쌍한 사람, 가난한 사람을 보면 도와 주려고하는 ‘측은지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보내 주셨습니다.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라 해도 달려가서 구해 주려고 합니다. 이것이 측은지심입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심장병 어린이, 백혈병 어린이를 돕기 위해 하루 종일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작은 정성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측은지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말을 하면서 꽃동네를 이끌어 온 봉사자와 신부님도 모두 측은지심이 있었습니다. 측은지심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옳고 그른 것을 가릴 줄 아는 ‘시비지심’입니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도 우리는 무엇이 선한 일인지, 무엇이 악한 일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상을 닮도록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자신의 잘못을 알았기 때문에 몸을 숨겼습니다. 카인은 동생을 죽인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학교에서 상을 받으면 부모님께로 달려가는 것이 아이들의 마음입니다. 유리창을 깨거나, 친구와 싸워서 상처가 났으면 되도록 늦게 집으로 가는 것도 아이들의 마음입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주님께로 향하는 3가지 덕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이 또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첫째는 ‘믿음’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자녀들을 믿어 주셨습니다.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믿어 주셨습니다. 언제가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집을 나간 아들을 위해서 꼭 밥 한 그릇을 남겨 두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조건, 치유의 조건으로 믿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돈이나, 권력, 재능이 아니셨습니다. ‘믿습니까! 당신과 당신의 집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거래를 원하시지 않았습니다. 비록 우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다홍같이 붉어도 눈처럼, 양털처럼 하얗게 해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를 믿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소통이 안 되고, 부정과 불의가 자라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신뢰, 서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희망’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 말씀드렸습니다. 50명만 되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을 것입니까?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부탁을 받아들이셨습니다. 5명만 되어도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것은 ‘희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12명의 제자들에게서 하느님나라가 이루어지는 희망을 보셨습니다. 농부는 작은 씨앗에서 많은 열매가 맺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월남으로 파병된 군인들, 중동의 모래바람을 견디어낸 근로자들, 서독의 탄광에서 탄을 캔 광부들은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 희망이 경제 성장의 발판이 된 것입니다.
셋째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는 것은 예전에 보는 것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새로운 계명은 ‘사랑’입니다. 여러분의 이웃을 여러분의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죽을 고통을 감수하면서 아이를 출산하는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 기러기 아빠가 되는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콩팥과 간을 나누는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고, 참된 구원의 길을 3가지 알려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삼덕입니다.
첫째는 ‘순명’입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순명의 길입니다. 사제들은 주교님의 뜻에 순명합니다. 주교님께서 명하시는 곳은 아무런 불평과 불만 없이 따르는 것이 교회의 전통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길을 가셨기 때문에 사제들도 가는 것입니다. 비록 가시밭길이라도, 고난의 길이라도 가야 합니다.
둘째는 ‘가난’입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난은 악한 세력에게는 가장 두려운 힘이었습니다. 대통령의 형이 구속되는 것도, 대통령의 아들들이 감옥에 가는 것도 재물에 대한 탐욕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되다 하느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셋째는 ‘정결’입니다. 단순히 독신을 지키는 것이 참된 정결이 아닙니다.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정결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 정결입니다. 사랑하는 배우자를 위해서 다른 곳에 눈길을 돌리지 않는 것이 정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정결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가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구원의 길입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린 것들은 우리가 모두 아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지키지 못하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시편의 말씀이 부족한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다. ‘주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용서할 자 어디 있겠습니까? 용서하심이 주님에게 있사와 더더욱 주님을 섬기라 하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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