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는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님의 이임미사가 명동에서 있었습니다. 모든 이를 위해 모든 것이 되려 하셨던 추기경님, 주님을 위해서 달릴 길을 충실하게 달리셨던 추기경님께 깊은 존경을 드립니다. 이제는 혜화동 동민으로 가신다는 추기경님께서 영육 간에 더욱 건강하시도록 기도합니다. 어제 명동에서 미사를 마치고, 모처럼 의정부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방송으로 중계된 추기경님의 이임미사를 보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관심은 추기경님께 있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텔레비전에 아들 신부의 모습이 보이는지 그것만을 보셨다고 합니다. 사랑은 그런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매 순간 자식을 생각하는 사랑입니다. 자식은 어쩌다 생각나면 돌아보는 그런 사랑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딸은 다른 것 같습니다. 어제 어머니와 저녁을 먹는데 동생 수녀가 전화를 하였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수녀님이 가끔 전화를 하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매일 전화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혼자계신 어머니를 위해서 매일 전화를 하던 동생 수녀님이 저 보다 더 어머니를 위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운동 신경이 별로 없습니다. 연습도 별로 하지 않아서 운동 경기를 할 때면 늘 자신이 없습니다. 서서울 지역 ME 모임에서 운동경기를 하였습니다. 저와 등촌 1동 성당 신부님이 ‘재기차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진행자는 제가 이길 것 같은 사람들은 제가 있는 곳으로, 등촌 1동 신부님이 이길 것 같은 분들은 등촌 1동 성당 신부님 쪽으로 이동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날 함께 한 분들이 600여 명이었습니다. 많은 신자들은 등촌 1동 신부님 쪽으로 옮겨갔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운동을 잘 하셨고, 체격도 저보다 좋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흥5동 신자들과 일부 신자들은 제 편에 섰습니다. 제가 운동 신경이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본당 신부라서 마음은 등촌1동 성당으로 가고 싶어도 정 때문에 제 편으로 오신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재기차기는 시작되었고 등촌1동 성당 신부님은 3개를 찼습니다. 저는 4개만 차면, 이기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저는 2개 밖에 차지 못하였습니다. 본당 신자들의 간절한 마음과는 달리 저는 지고 말았습니다. 훌라후프를 했다면 제가 이길 수도 있었는데, 제가차기를 했기 때문에 졌다고 말을 하면서 저의 편에 서 주신 분들을 위로했습니다.
성모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시기를 원하셨을 까요? 십자가의 무게가 무거워 3번씩이나 넘어지면서도 끝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시기를 원하셨을까요? 옆구리를 창에 찔리시기를 원하셨을까요? 제자들도 다 도망가고, 혼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시기를 원하셨을 까요? 아니면 평범하게 직장을 구하고, 좋은 여자 만나서 가정을 이루기를 원하셨을까요? 손자, 손녀들의 재롱을 보면서 살기를 원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그렇게 고난의 길을 가셨을까요?
예전에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좋은 대학교에 입학을 했고, 졸업만 하면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할 수 있던 친구들입니다. 그런 친구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데모를 했고, 데모를 하는 과정에서 형사들에게 쫓기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수배자가 되었고, 감옥에도 가게 되었고, 학교에서 제적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좋은 직장은 구할 수 없게 되었고, 그들이 그렇게 바랐던 민주화는 이루어졌지만 많은 학생들은 아직도 고문의 후유증을 겪고 있으며,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 학생들의 어머니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자식의 건강, 성공, 출세, 결혼을 바랄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생각입니다. 하지만 어떤 아들은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기 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 불의한 일에 저항하는 일,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일을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일을 먼저 하였던 예수님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억울하게 비참하게 십자가위에서 돌아가신 아드님을 가슴에 묻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모님의 마음을 티 없으신 마음이라고 말을 합니다.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시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복되시고 영화로우신 동정녀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