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문학, 고고학, 지리학, 생명공학, 유전공학,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큰 선물을 주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 없이도 세상에서 잘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마치 창세기에서 사람들이 하늘까지 닿을 수 있도록 바벨탑을 만들려고 했던 것처럼, 이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사람들의 능력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삶을 윤택하게 하는 가전제품들, 쉽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들, 빠르게 정보에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멀리 있는 사람과 대화 할 수 있는 핸드폰 등을 만들어 냈습니다. 의료 기술과 농업 기술의 발달은 사람들의 평균 수명을 100세까지로 늘려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상과 풍조는 종교에도, 성서학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많은 성서학자들은 성서를 학문적으로, 고고학적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과학의 눈으로, 역사의 눈으로 성서를 읽게 되면 궁금한 것들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비판적으로 성서를 읽게 되면 의심과 회의가 생기게 됩니다. 이것은 “Lectio Critica”라고 합니다. 마치 양파의 껍질을 벗기면 나중에는 남는 것이 없듯이, 성서를 비판적으로 읽게 되면 성서가 전해 주려고 하는 하느님의 사랑, 이웃 사랑, 하느님의 자비, 인간의 잘못 과 같은 것들은 사라지고 맙니다.
성서를 공부하는 학자들은 크게 4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근본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성서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글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두 번째는 보수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성서가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기록했지만 시대에 따라서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인정은 합니다. 하지만 교회의 전통과 교회의 규범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세 번째는 진보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인문학과 고고학의 연구 성과를 인정합니다. 교회의 전통과 규범도 새로운 학설과 새로운 것들이 발견되면 수정되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네 번째는 급진주의자입니다. 이들은 성서의 모든 것들은 새로운 시대에 따라서 변하고 바뀌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교회의 전통과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학자들은 그렇게 연구하고, 비판적으로 성서를 읽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들은 어떻게 성서를 읽어야 할까요? 최근에는 성서를 있는 그대로 읽으면서 묵상하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영적 독서라고 합니다. 라틴어로는 “Lectio Divina”라고 합니다. 성서를 영적으로, 신앙의 눈으로 읽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보석’을 발견하게 됩니다. 교회는 전통과 규범에 따라서 성서의 권위를 인정하고, 성서의 말씀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인도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인류의 역사와 성인 성녀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성서의 힘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신앙이 신학은 잘 모르시지만 매일 새벽 미사에 나오셔서 열심히 기도하시는 할머니보다 더 깊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신학의 깊이가 신앙의 깊이와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성서 말씀 중에서 두 가지만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하나는 천사들이 한 말입니다. “여러분은 왜 하늘만 쳐다보고 있습니까?” 신앙은 하느님께서 내 삶의 첫 번째 자리에 오는 것은 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기도, 희생, 봉사, 나눔의 행동을 통해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도 기름이 없으면 움직이지 못합니다. 병원에서 의사들이 환자들을 치료하지만 병을 낳고자 하는 환자들의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절망 중에 있는 환자, 불평과 원망이 가득한 환자는 아무리 훌륭한 의사라도 치료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만 쳐다보지 말하고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3가지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첫째는 마귀를 쫓아내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느님을 내 삶의 첫째 자리에 모시지 않고 다른 것들을 내 삶의 중심에 놓은 것입니다. 자식을 삶의 첫 번째 자리에 놓은 분도 있고, 돈을 첫 번째 자리에 놓은 분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술과 여자를 첫 번째 자리에 놓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병자들을 고쳐주라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병만이 병이 아닙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도 병입니다. 남을 원망하고 시기하는 것도 병입니다. 교만과 허세로 이웃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병입니다. 이런 병을 치유하는 것은 겸손과 희생 그리고 봉사입니다.
세 번째는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천국 불신 지옥”이라고 지하철에서 떠드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삶과 행동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을 믿으면 저렇게 행복하구나! 예수님을 믿으면 가족들이 저렇게 서로 사랑하는구나! 예수님을 믿으면 저렇게 기쁘구나!’라고 느끼게 해야 합니다.
오늘은 예수 승천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비행기로 가셨는지, 우주선으로 가셨는지를 궁금해 하기보다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그 사명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좋은 자리를 마련해 놓는다고 하셨으니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