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리석은 사람은 얻음에서 기쁨을 얻고, 현명한 사람은 버림에서 기쁨을 얻는다.” 저는 이 글을 고속도로의 화장실에서 읽었습니다. 화장실에 가는 사람은 좀 더 많이 버리기를 바랄 것입니다. 많이 비울수록 기쁨이 커지는 곳이 화장실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우리의 삶에서 더 많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많은 전쟁과 폭력은 더 얻으려는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소중한 생명을 죽이고, 애써 쌓아온 신뢰와 우정을 깨버렸습니다.
사찰에서 수행해야 할 스님들이 언론에 좋지 않은 모습으로 보도되는 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좀 더 나누고, 양보했다면 그런 일들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보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이 진흙탕에서 뒹구는 것처럼 다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국회의원 자리가 국민의 애정보다, 국민의 준엄한 시선 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 자리를 기꺼이 내 놓을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쉽게 아물 수 있는 상처입니다. 결국 검찰에 의해서 수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제 안에서 분노와 원망이 독버섯처럼 자랄 때가 있습니다. 그것도 모두 제가 좀 더 얻으려고 욕심을 부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에는 다양한 기능을 하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머리에는 눈, 귀, 코, 입이 있어서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를 맡습니다. 손과 발이 있어서 도구를 사용하기도 하고, 원하는 곳으로 이동을 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우리 몸의 지체들은 한 몸을 이루어서 원활하게 생활 할 수 있도록 서로 도움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우리 몸의 지체가 한 몸을 이루듯이 우리들 신앙인 모두가 한 몸을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 당신이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모두 하나 되게 하소서. 당신이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되리이다.”
건강하던 우리 몸에 이상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것은 ‘암’입니다. 암은 우리 몸의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른 세포들은 자신의 영양분을 다른 세포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적당한 크기를 유지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암세포는 자신의 영양분을 다른 세포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고 혼자만 간직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성장하게 되며 주변의 세포들에게 피해를 주고 결국은 암세포도 죽게 된다고 합니다. 암세포의 비극은 자신의 영양분을 나누어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암세포가 치유되는 것은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서 자신의 영양분을 주변의 다른 세포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을 때입니다.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누는 것입니다. 조건 없이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빵이 되셔서 우리들에게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를 통해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도 죽음의 순간까지 자신의 안구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나눔은 우리가 하나 되는 지름길입니다.
며칠 전에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활동으로 도시락을 전해 드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홀로 지내는 어르신들, 소년 소녀 가장들에게 도시락을 전해 드리는 것은 아름다운 나눔입니다. 도시락을 통해서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날씨는 점점 무더워 질 것입니다. 주변에 우리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일들도 줄어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신앙 안에서 주님과 하나 될 수 있다면 그런 모든 것들도 기쁨으로 변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