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는 선교 산악회 회원들과 속리산엘 다녀왔습니다. 속리산에는 정이품 소나무와 법주사가 있습니다. 산에는 깨끗한 공기와 시원한 물과 싱그러운 바람이 있어서 좋습니다. 성서에서 산은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구약에서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께서는 타볼 산에 올라가셔서 하느님을 만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세상을 잘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하느님을 닮은 사람들이 잘 다스리기를 원하십니다. 두 번째는 하느님을 경배하고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하느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과 우리들의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요? 그렇습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느님과 우리들의 관계를 바꾸어 주신 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우리들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제 여러분을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을 이제 벗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은 모두 형제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내일은 손훈 마티아 신부님의 축일입니다. 신부님께서 영, 육간에 건강하시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제들에게 신자들의 기도는 커다란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는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님의 기일이 있었습니다. 시간은 참 빨라서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친척 어르신께서 이렇게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기일은 가족들에게는 슬픈 추억이지만 친지들에게는 기쁜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기일에 친지들이 함께 모여서 정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어릴 때 할아버지, 할머니 기일이 되면 즐거웠습니다. 시골에서 친척들이 오시고, 친척들은 제가 귀엽다고 용돈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친척들 중에는 제 또래의 사촌들이 있어서 함께 놀기도 했습니다. ‘생로병사, 희로애락’은 인생의 여정에 함께하는 것들입니다.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면서 살기에도 부족한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어머님께서는 아버님과 58년을 함께 사셨습니다. 어머님께서 잔병치례를 많이 하셔서 어머님께서 먼저 돌아가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는 어머님보다 먼저 돌아가셔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말씀대로 먼저 하느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말은 하지 않으셨지만 사랑이란 무엇인지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말 못할 사정이 있으셔서 돈을 벌지는 못하셨습니다. 그런 아버님을 대신해서 어머니는 밥장사, 연탄장사, 파출부까지 하시면서 자녀들을 키우셨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아버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때를 잘못 만난 아버님의 처지를 늘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늦은 시간에 귀가하시는 아버님을 위해서 따뜻한 밥을 장롱 이불 속에 넣어 두셨습니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어릴 때 이불을 꺼내다 아버님의 밥그릇을 방바닥에 떨어트린 적이 있었습니다. 어머님은 아버님을 위해서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담아 발을 씻겨드리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말은 하지 않았어도 지극한 사랑이셨습니다.
아버님께서도 어머님을 사랑하셨습니다. 제가 적성 본당 주임신부로 있을 때 아버님은 3년 동안 혼자서 지내셨습니다. 평생 라면도 끓이지 않으셨던 아버님께서 혼자서 3년을 지내셨습니다. 혼자서 밥도 하시고, 설거지도 하시고, 청소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평생 어머님께 미안했던 마음을 3년 동안 혼자 지내시면서 되갚았습니다. 생전에 아버님께서는 새벽이면 어머님께서 잘 주무시는지 살펴 주셨다고 합니다. 부유하게 살지는 않았지만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면서 사셨던 부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1991년 사제서품을 받고 보좌신부로 중곡동 성당으로 갔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만난 본당신부님을 잊지 못합니다. 그분께서는 제게 사제 생활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것인지를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식사 후에는 함께 산보를 가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성당 주변을 함께 산보하면 신자들을 만나게 되고, 장사를 하시는 교우들도 만나게 됩니다. 신자 분들은 함께 산보를 하는 본당 신부님과 저를 보시고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구속되거나 형식적인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머리에 파마를 하시기도 하셨고, 머리를 리본으로 묶으시기도 하셨습니다.
사제 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를 위해서 스키도 사주시고, 함께 스키장엘 가기도 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저를 위해서는 기꺼이 새벽미사를 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보좌 신부가 청년들을 만나면 돈이 필요할 것이라고 하시면서 언제나 풍족하게 용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은 매일 3시간씩 성당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신부님 사제관에는 기도 방이 있었습니다. 기도 방에는 많은 성물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신부님께 무슨 무당 집 갔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사제관에 기도 방을 만들어 놓고 언제나 커다란 초가 다 녹아내리도록 기도하시는 신부님께서는 제게는 너무나 자상하시고, 사랑이 넘치시는 주임신부님이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늘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조신부가 원하는 대로 남에게 해 주면 돼!’ 그렇습니다. 사랑은 남이 내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해 주는 것입니다. 지금은 멀리 미국에서 교포사목을 하시는 신부님께서 언제나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성서 말씀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죄인까지도 품어주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고통과 수난을 감수하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끝까지 믿어주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죽기까지 열정을 다하는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은 어쩌면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해 줄 수 있는 사랑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옆에 있는 분들에게 잠시 인사를 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