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습니다. 아름다운 것들 중에는 꽃이 있습니다. 꽃은 색깔도, 향기도,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저는 코스모스, 채송화, 들국화와 같은 꽃을 좋아합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순수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아름답습니다. 특히 어린 학생들의 눈망울은 순수하고 깨끗합니다.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는 것도 즐거움입니다. 제 눈 아래에 있던 아이들은 이제 제가 고개를 들어 보아야 합니다. 성당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사랑스럽습니다.
본당의 성모동산을 보는 것은 기쁨입니다. 지난 주일에 형제님들과 함께 동산의 잡초를 뽑고, 정리를 하였습니다. 깨끗이 청소를 한 방처럼 성모동산은 아름답게 변하였습니다.
행복은 분명 멀리 있지 않습니다. 기쁨은 꼭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우리는 행복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맑은 하늘에 가끔 먹구름이 오듯이 행복하고 기쁜 우리의 삶에도 분명 갈등과 번뇌의 먹구름이 몰려 올 것입니다. 하지만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행복했던 순간, 고마웠던 순간, 감사했던 순간들을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복권을 사는 것은 앞으로 올 기쁨을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꽃 한 송이를 사서 식탁에 올려 논다면 오늘 내가 기쁘고, 나의 가족들이 기뻐질 것입니다. 예전에 읽은 글입니다. 퇴근길에 꽃집에서 모처럼 꽃 한 다발을 사다 주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마음이 고마워서 예쁜 꽃병을 샀습니다. 식탁보도 바꾸었습니다. 의자도 수리했습니다. 낡은 커튼도 바꾸었습니다. 어지러운 방도 정리를 했습니다. 다음날 퇴근한 남편은 너무도 변한 집안의 분위기에 놀랐습니다. 남편이 사온 꽃 한 다발이 가정을 화목하게, 행복하게 바꾸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본능에 따라서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고, 삶의 목적과 가치를 따지지 않는 삶입니다. 다음은 감성에 따라서 사는 삶입니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울고, 웃는 삶입니다. 이것은 동물과는 다른 삶의 시작입니다. 다음은 이성에 따라서 사는 삶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설정합니다. 도덕과 계명이 있고, 仁義禮智와 같은 덕을 삶의 가치로 여기게 됩니다. 사람은 부끄러움을 알고, 겸손함을 알고, 자비로움을 알게 됩니다. 그 다음의 단계는 오성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4차원의 세계를 사는 것과 같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참된 나를 알고,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소유와 명예,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삶입니다. 하느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삶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바로 그와 같은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신앙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면서 또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기쁨과 평화 그리고 자유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는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