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열대야도 끝났고, 런던 올림픽도 끝났습니다. 우리들을 잠 못 이루게 했던 것들이 모두 끝났습니다. 지난 런던 올림픽에서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심판의 잘못된 판정입니다.
박태환 선수는 부정 출발했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고의성이 없었다고 인정되어서 실격처리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지는 동안 마음고생이 많았습니다. 조준호 선수는 심판 전원일치로 승리 했지만 심판 위원장의 번복으로 지고 말았습니다. 진줄 알았던 일본 선수도 미안해했고, 다 이긴 게임을 심판의 판정 번복으로 패배한 선수는 망연자실 했습니다. 신아람 선수는 흘러가지 않았던 ‘1초’ 때문에 결승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시간 계측 요원이 실수를 했기 때문입니다. 신아람 선수에게는 순간의 1초가 아마도 몇 년과 같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올림픽을 위해서 피나는 훈련을 하였고, 최선을 다한 선수들입니다. 원망과 분노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선수들은 모든 원망과 분노를 풀어버리고 남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했고,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원망을 원망으로 풀어서는 아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 것이 최선은 아닙니다. 때로는 옳은 것도, 그른 것도 모두 놓아 버릴 수 있어야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이 생각납니다. ‘얼굴이 좋은 것은 건강이 좋은 것만 못하고, 건강이 좋은 것이 마음이 착한 것만 못하고, 마음이 착한 것이 덕이 있는 것만 못하다.’는 글입니다. 신앙인들은 외모를 가꾸는 것보다는 마음을 가꾸어야 합니다. 착한 마음을 갖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고,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강조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외모가 아니었습니다. 건강한 몸도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고, 그것의 출발은 아름다운 마음, 이웃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제자들의 외모는 모릅니다. 그분들이 얼마나 건강했는지도 잘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분들이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고, 이웃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혼자 살아가는 짐승은 외모와 건강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가장 사랑했던 제자 중에는 ‘자공’이 있습니다. 자공 또한 공자를 무척 따르고 존경했기에 공자의 사후에 6년이나 무덤을 지켰습니다. 어느 날 자공이 공자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정치란 무엇입니까? 정치는 백성을 먹이는 경제, 나라를 지키는 군사, 백성의 마음을 아는 신뢰이다. 만약에 이 셋 중에 하나를 버리라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군사를 버려야 한다. 남은 둘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경제를 버려야 한다. 백성의 신뢰를 잃은 나라는 바로 설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는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군인들과 대항해서 싸우는 군인들도 아니었습니다. 바람을 잠재우고,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는 치유의 능력도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을 신뢰하고, 제자들을 신뢰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하느님을 신뢰하고,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했기에 고난의 잔을 마셨습니다. 부족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지만 제자들을 끝까지 믿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신 것이고, 이것이 바로 오늘날 교회를 있게 한 뿌리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은 하나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으셨지만 서로 다른 다양성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평화입니다. 주님께서는 군사와 권력으로 하나를 만들 수 있었지만 십자가를 통해서 공존을 모색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나와 같은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同化’가 아니었습니다. 나와 다른 것을 없애는 힘의 통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평화와 공존을 이야기하면서 동화와 흡수통일을 지향하는 면이 있습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입니다. 우리들 역시 잠시 머물다 가는 세상입니다. 평화와 공존은 인류 지성이 추구했던 삶의 가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