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며칠 전에 ‘연필의 영성’이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그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연필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연필을 잡아 주어야 합니다. 우리들 역시 우리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기 보다는 하느님께 먼저 의지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연필은 깎여야 하고, 조금씩 없어지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우리들 역시 희생과 봉사를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연필은 겉모습보다는 연필심이 중요합니다. 결국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연필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역시 겉모습을 꾸미기 보다는 우리들의 마음을 잘 가꾸어야 합니다.
연필은 잘못 쓰면 지울 수 있습니다. 우리들 역시 삶의 과정에서 실수하고, 잘못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고, 이웃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연필로 쓴 것은 지울 수 있지만 흔적은 남게 됩니다. 우리들도 살아가는 모든 것들의 흔적이 남게 됩니다. 그러기에 더욱 더 신중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작은 연필도 자세히 보면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당의 마당에 있는 대추나무를 봅니다. 작고, 부실한 열매들은 스스로 떨구어 내는 것을 봅니다. 그래야만 알찬 열매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추나무조차도 자신의 아픔을 감수하면서 알찬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들 역시 하느님 앞에 알찬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무는 뿌리가 있어야 가뭄도 견디고, 바람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집도 기둥이 있어야만 오랜 세월 지탱할 수 있습니다. 나무의 뿌리와 같은 사람, 건물의 기둥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봉사자들입니다. 이번 노인대학 수련회에서는 봉사자들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봉사자들의 노력으로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가마솥에 불을 지피는 분, 삼계탕을 끓이는 분, 어르신들 간식으로 전을 부치는 분, 수박을 나르는 분, 사진을 찍는 분, 고기를 굽는 분, 무거운 물건을 나르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저는 겉으로 드러난 꽃이라면 봉사자들은 어둠 속에서 양분을 찾는 뿌리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라우렌시오 부제도 바로 그런 봉사자였습니다. 더운 여름을 식혀주는 소나기처럼, 우리들 모두는 주님을 위한 봉사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