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화요일에 레지오 단원들과 ‘성거산 성지’로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성거산 ‘거룩한 것’이 머문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 이름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 임금께서 지었다고 합니다. 성거산이 신앙 안에서 거룩한 이유는 박해를 피해서 교우들이 삶의 터전을 마련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우촌은 공소가 되었고,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후에는 본당이 되었습니다. 교우촌은 우리 신앙의 뿌리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성거산에는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무명 순교자들은 이름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한국의 교회사에서 순교자는 10,000여명입니다. 그중에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는 1,500명 나머지 8,500명은 무명 순교자입니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이름마저 하느님 대전에 바쳤습니다.
이분들을 우리의 기억 속으로 되살리신 분이 있습니다. 교우촌을 다시금 신앙의 뿌리로 되살리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대전교구의 정지풍 신부님입니다. 외모는 순박하시고, 키도 저처럼 아담하신 분입니다. 강론도 투박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삶을 보니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의과대학 4학년을 다니다가 육체의 병을 치료하는 것보다는 영혼을 구하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 같아서 가족들의 반대와 만류를 뿌리치고 사제의 길을 걸었다 합니다. 가족들도 이제는 모두 신앙인이 되었고, 신부님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셨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무명 순교자들의 삶을 닮은 것이 야생화라고 생각하시고, 성지 곳곳에 이름을 모르지만 아름다운 야생화들을 심으셨습니다. 성지에 오신 분들이 기도하고, 침묵 중에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좋은데 가끔 쑥을 캐거나, 야생화를 캐는 분들이 있어서 안타깝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사람을 외모만 보고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만이 있는 곳은 아닙니다. 허물이 있는 사람도 있고, 다시 잘못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순간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언쟁을 벌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은총의 빛으로 교회를 비추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부족한 사람들이지만 주님을 믿고 따르면서 서로 아껴주고, 사랑할 때 우리의 부족함도 우리의 허물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우리의 허물을 씻어내는 가장 큰 방법은 바로 겸손함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았을 때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사람 안에 있는 하느님의 모상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외모와 능력을 보고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그분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분들을 주님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생각하며 정성껏 우리들의 마음을 다해서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거산에는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무명 순교자들은 이름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한국의 교회사에서 순교자는 10,000여명입니다. 그중에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는 1,500명 나머지 8,500명은 무명 순교자입니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이름마저 하느님 대전에 바쳤습니다.
이분들을 우리의 기억 속으로 되살리신 분이 있습니다. 교우촌을 다시금 신앙의 뿌리로 되살리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대전교구의 정지풍 신부님입니다. 외모는 순박하시고, 키도 저처럼 아담하신 분입니다. 강론도 투박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삶을 보니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의과대학 4학년을 다니다가 육체의 병을 치료하는 것보다는 영혼을 구하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 같아서 가족들의 반대와 만류를 뿌리치고 사제의 길을 걸었다 합니다. 가족들도 이제는 모두 신앙인이 되었고, 신부님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셨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무명 순교자들의 삶을 닮은 것이 야생화라고 생각하시고, 성지 곳곳에 이름을 모르지만 아름다운 야생화들을 심으셨습니다. 성지에 오신 분들이 기도하고, 침묵 중에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좋은데 가끔 쑥을 캐거나, 야생화를 캐는 분들이 있어서 안타깝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사람을 외모만 보고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만이 있는 곳은 아닙니다. 허물이 있는 사람도 있고, 다시 잘못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순간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언쟁을 벌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은총의 빛으로 교회를 비추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부족한 사람들이지만 주님을 믿고 따르면서 서로 아껴주고, 사랑할 때 우리의 부족함도 우리의 허물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우리의 허물을 씻어내는 가장 큰 방법은 바로 겸손함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았을 때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사람 안에 있는 하느님의 모상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외모와 능력을 보고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그분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분들을 주님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생각하며 정성껏 우리들의 마음을 다해서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