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 4주간 월요일

2011. 5. 17. 오전 5:49:27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 우리는 신분의 貴賤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신분이 엄격하게 나눠지는 사회였습니다. 가끔씩 사극을 통해서 양반, 천민이 살아가는 세상을 봅니다. 양반으로 태어나면 평생 대접을 받고 살아갑니다. 천민으로 태어나면 배우지도 못하고 무시와 멸시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신분이라는 ‘벽’을 넘어설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천주교는 초기에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바로 천주교회는 이런 신분의 벽을 깨려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는 신분의 귀천이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양반도, 천민도, 노비도 하느님을 믿으면 모두 같은 형제요 자매가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엄연히 신분을 나누던 조선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생각이었습니다.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발상이었습니다. 당시에 많은 혜택을 누리던 양반들에게는 커다란 도전이었습니다.

천주교를 받아들였던 많은 노비와 천민들은 새로운 세상을 보았고, 그들에게는 신분의 귀천이 없어지는 신앙의 세계가 바로 천국이었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뒤를 이어 조선의 두 번째 사제가 되었던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은 두 가지를 주장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양반과 천민이 없는 평등한 세상입니다. 서양의 학문을 배웠던 최양업 신부님은 바로 그런 세상이 발전하는 것이고, 그런 나라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나라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선교사들은 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조선의 문화와 전통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사람이 되셨고, 사람들의 생각과 사람들의 언어를 배우셨듯이, 선교사들은 먼저 선교해야 하는 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배워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야만 충돌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에도 이런 문제들이 자주 발생하였습니다. 유대인들과 사도들은 서로 생각이 많이 달랐습니다. 같은 유대인이었고, 같은 전통과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지만 유대인들은 사도들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의 체험한 ‘예수님’을 전하려고 하였고, 유대인들은 사도들의 말을 알아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전통과 자신들의 신념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 대화를 하지만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남과 북’의 대화도 그렇고, 거의 모든 일에 합의를 보지 못하는 정치인들도 그렇습니다. 저도 동료들과 대화를 할 때 듣기는 하지만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선입견 때문에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식별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사목적인 결정을 하였습니다. 사람을 헤치지 않고,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라면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결정을 통해서 교회는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을 지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참된 선교는 바닷물에 녹아 있는 소금처럼 우리가 희생과 사랑으로 녹아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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