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9주간 목요일

2010. 10. 21. 오전 6:31:23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30년 전의 신문을 보면 한글을 사용했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습니다. 우리사회가 많이 변하고 발전했기 때문에 당시의 사고와 당시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매주 학생들은 운동장에 모여서 ‘국민조회’를 했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더운 여름에도 학생들은 모두 운동장에 줄을 서서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반에는 교훈과 급훈이 있었습니다. 물론 학생들은 그 교훈과 급훈을 외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학생들이 매주 운동장에 나와서 ‘국민조회’를 하지는 않습니다.

중, 고등학교 때에 선생님들은 체벌을 많이 했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체벌에 대해서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은 당연히 그럴 권한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수업시간에 떠들어도, 숙제를 하지 않아도, 성적이 떨어져도, 지각을 해도, 결석을 해도 체벌을 받았습니다. 학생들은 그런 체벌에 대해서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당시는 문화가 그랬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체벌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칠거지악’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거부감을 느끼는 말입니다. “시부모에게 불손함, 자식이 없음, 행실이 음탕함, 투기함, 몹쓸 병을 지님, 말이 지나치게 많음, 도둑질을 함’과 같은 것입니다. 아마 요즘 시대에 이와 같은 말을 한다면 정신이 이상하다는 말을 들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남존여비의 사회였고, 사회의 모든 조직이 남성 중심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었을 것입니다.

요즘 우리들의 문화, 생각, 정신, 예술, 종교 생활도 100년 후의 사람들이 바라보면 이해하지 못할 부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다. 나는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가정도, 이웃도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정도, 친구도, 이웃도 갈라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하신 말씀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돈 때문에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갈라서는 사람들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체면 때문에 장애인인 자녀를,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모른 척하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욕망과 욕심 때문에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단체들이 있고, 세례를 받은 신앙 공동체이지만 때로 분열과 갈등이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뜻을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선배들이 ‘새롭게 부임하는 본당에서는 적어도 6개월은 그냥 지켜보아야 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6개월만 지켜보면 자신의 뜻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이 문제입니다. ‘재물, 명예, 욕심’이 앞서면 가족이라 해도, 친구라 해도, 이웃이라 해도 갈라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면 아무리 성격이 달라도, 오랜 갈등이 있었다 해도, 원한과 미움이 가득했다 해도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는 가가 중요합니다.

 

댓글 2

  • 2010년 10월 21일 오전 7:22

    아침에 읽으니 훨씬 말씀이 잘 들립니다.. 아멘!!

  • 2010년 10월 21일 오후 10:5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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