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7주간 수요일

2010. 10. 6. 오전 8:35:39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월요일에는 작년에 세례를 받으신 분들과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새 영세자들이 함께 대화를 하고, 의지를 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니 무척 기뻤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저도 오늘 기도에 해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기도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과 대화” 또는 “하느님과의 만남”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진정한 대화를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대화를 한다고 하면서 독백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화와 독백의 차이는 분명 상대방이 있다는 것이 체험되느냐 안 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진정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하느님 현존 체험”이 우선 되어야 진실한 기도를 한다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 문제는 “어떻게 하느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하느님 체험을 할 수 있는 “잠심 혹은 침묵의 상태”에 어떻게 이를 수 있습니까? 그것을 위해서는 여섯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여유”입니다. 우리는 기도 안에서도 현실에서와 같이 무엇인가 빨리 빨리 하려고 합니다. “빨리 한다.”는 것은 결국 생각을 만들어 내고, 생각이 나면 내 중심적으로 무엇을 하게 되는 것이라 거기에는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하고 있는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안에서는 되도록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인내”입니다. 우리는 자판기 문화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즉 자판기에 돈을 넣고 누르면 마시고 싶은 것이 나오고, 그것이 나오면 그 기계는 고장 나지 않은 것이듯이 하느님께 기도를 하고 그것을 하느님께서 들어 주셨으면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하며 하느님이 계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자판기에 돈을 넣고 아무 것도 나오지 않으면 고장 난 것이듯, 하느님께 기도하고 하느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으면 하느님도 고장 난 것이고 이때부터 우리는 냉담하기 시작합니다.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지선이라는 학생의 이야기입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지선이는 이화 여자 대학교에 다니던 아주 예쁜 학생이었습니다. 꿈도 많았고, 친구들과 가족들로부터 사랑받는 행복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런 지선이는 오빠와 함께 도서관에서 나와 차를 타고 가다가. 술에 취한 젊은이가 모는 차와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차에 갇힌 지선이는 차가 폭발하여 불이 나자 온몸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지선이의 홈페이지에 가보면 아주 아리따웠던 때의 지선이 사진이 있고, 사고 후에 몹시 일그러진 모습의 지선이 얼굴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선이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비관하거나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홈페이지를 찾는 사람들에게도 오히려 위로와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백만 명이 지선이의 홈페이지를 방문했고, 그곳에서 위로와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조건부의 사랑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입니다.

이점을 가장 잘 드러내는 시편이 시편 23장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 그 이름 목자이시니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곧은길이요,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이렇게 우리가 무엇을 얻는데 인내하지 않는다는 것은 “역할 혼동”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즉 역할에는 “하느님 역할”과 “나의 역할”이 있는데 하느님의 역할을 우리가 하려고 할 때 역할 혼동에 빠지는 것이고, 이것 때문에 신앙생활에 혼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잠언서 16장 33절의 말씀처럼 “주사위는 내가, 결정은 야훼께서”라는 것처럼 우리의 역할은 주사위를 던지는 것이고 하느님 역할은 그 숫자를 결정해 주시는 역할을 하십니다. 로또 복권처럼 숫자는 우리가 정하지만 1등 당첨은 우리가 정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열심히 주사위를 던지고 나서, 내가 원하는 숫자가 꼭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듯이 내 청을 꼭 들어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것은 하느님 역할을 자신이 하는 것이고, 하느님을 자기 종처럼 부리겠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을 혼란에 빠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역할은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던 안 들어주시던 그것은 하느님께 맡기고 인내를 가지고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필요한 것은 “갈망, 혹은 열망”입니다. 기도할 때 하느님을 “만나도 그만, 안 만나도 그만”하는 마음가짐으로 하는 것과 하느님을 만나려고 하는 간절함이 있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겠다는 간절한 열망이 적으면 그만큼 하느님 현존 체험은 어려워지기 때문에 만나려는 갈망이나 열망이 간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적성 성당에 있을 때 매주 수요일 서울에서 적성까지 미사 참례를 오시는 교우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자매님과 한 마디 대화를 나눈 적도 없지만 그 자매님께서는 적성 성당에 오셔서 미사 참례를 하려는 갈망이 있었습니다. 3년 동안 거의 매주일 미사 참례를 오시는 그 자매님은 아침 6시에 집을 나와서 지하철, 버스를 갈아타고 적성까지 오셨습니다. 2시간 이상 오는 그 길에서 그 자매님은 이미 하느님을 만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번째는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따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고, 밤늦게 기도하셨습니다. 운동선수들이 매일 정해진 시간에 운동을 하듯이, 우리가 다이어트를 하기위해서 규칙적으로 식사를 조절하듯이 기도도 정해진 시간에 할 때 처음에는 기도의 힘을 느끼지 못할 지라도 서서히 기도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꾸준히 해야 합니다. 일주일에 하루만 운동을 하고, 나머지 6일은 엉망으로 살면 건강을 유지하기 힘이 들것입니다. 또한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면서 한 달은 적게 먹고 나머지 11개월은 마음껏 먹는다면 몸매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기도도 늘 꾸준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이 기도의 묘미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여섯 번째로 기도는 죽기 살기로 해야 합니다. 하느님께 당신 자식 죽게 되었습니다. 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느님은 이런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여섯 가지를 체득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 체험”을 해야 합니다. 수영 한두 번 했다고 수영에 익숙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수백 수천 번 기어 다니다가 드디어 뒤뚱뒤뚱 걸어가는 것을 봅니다. 또한 수백 수천 번 어버 어버 하다가 엄마라는 말을 하는 것도 봅니다. 운전도 그렇습니다. 처음에 학원에서 운전을 배우지만 그렇다고 금세 도로에서 운전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연수를 해야 하고, 등에 식은땀을 몇 번 흘리고, 사람들에게 욕을 먹으면서 조금씩 운전 실력이 늘어가면서 어느새 분주한 거리에서 편안하게 운전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도 이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매일 매일 정해진 시간에 또는 허락되는 시간에 하느님 앞에 자기 자신을 보여 드리는 연습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시간이 쌓여 가면 어느덧 기도는 내 삶의 중심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이 여섯 가지를 체득시키면서 잠심 상태에 있어야 하고 그 상태에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기도에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많은 생각들을 흘러가게 놓아 둘 줄 알아야 합니다. “생각을 흘려보냄”의 중요성은 일상생활에서 나타납니다. 즉 누군가 나에게 욕을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기분이 좋지 않고 때에 따라서는 화가 납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사람의 말에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감정이 일어나는 데 그것은 내 안의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욕을 해도 그것을 흘려보낼 수 있다면 우리는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 흘려보내는 작업이 기도 안에서 뿐 아니라 일상생활 안에서도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을 흘려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을 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기도”에서 벗어나 “가슴으로 드리는 기도”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댓글 2

  • 2010년 10월 6일 오전 9:37

    아멘!

  • 2010년 10월 13일 오전 9:20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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