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는 금천구청 월례미사가 있었습니다. 매번 9층에 있는 대회의실에서 미사를 함께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지하 1층 주차장 옆에 있는 방에서 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9층의 대회의실은 전망이 좋았고, 음향시설도 잘 되어 있어서 미사를 봉헌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하 1층의 방은 음향시설도 없고,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도 들리고, 차들이 나가는 불빛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구청직원들에게 앞으로 이곳에서 계속 미사를 봉헌하는 것인지 물어보았습니다. 다행히 직원들은 이번에만 지하1층에서 하게 되었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사제생활을 하면서 많은 대우를 받게 됩니다.
식사를 할 때면 좋은 자리, 가운데 자리를 앉도록 배려를 해 줍니다. 음식이 나올 때도 먼저 먹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봉성체, 환자방문, 사도회, 반모임을 갈 때에도 차량을 준비해 줄 때가 많습니다. 차량 봉사를 하는 분들은 기쁜 마음으로 봉사를 하겠지만, 고맙다는 말을 거의 하지 못하였습니다.
교우들과 여행을 가거나, 본당의 행사로 외박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도 사제를 위해서 좋은 방을 준비해 주실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좋은 대우를 받고, 편안한 잠자리를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때로 힘들 때도 있고,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도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충실하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당부를 하셨습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세상의 구원자이신 예수님께는 호화로운 궁궐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초라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분이시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몸소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넘으셨고, 그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어제 지하1층에서 미사를 드리면서 잠시 저 자신을 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신앙은 높은 곳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낮은 자리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대우를 받고, 편안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서 가진 것을 나누고, 주님 때문에 불편하게 된 것을 기쁨으로 아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생각하면서 9월의 마지막 날을 지내고자 합니다.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용서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