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는 레지오 단원 중에 선서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축하하는 마음으로 단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단원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단원 중에서 몇 분이 제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평소에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셨고, 오늘 어제 질문의 내용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어떤 분이 몇 주 동안 성당 미사에 나오지 않은 것 같은데 영성체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일미사에 참례하지 않으면 십계명 중에 하나를 어기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고백성사를 보고 성체를 영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주일미사에 참례하지 못하게 된 이유를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출장을 갔는데 도저히 성당을 찾을 수 없어서 ‘주의 기도’를 대송으로 바칠 수도 있습니다. 미사에 가야할 시간인데 갑자기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갔을 수도 있습니다. 외국에 유학 갔다 온 아들을 맞이하러 가야할 때도 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충실한 믿음이 있고, 하느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다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주일미사에 참례는 못했지만 대송을 했다면 성체를 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는 것이 중요한지, 안식일 규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지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법과 규율을 지키려는 사람의 마음 자세입니다. 그 뜻을 알고, 기쁜 마음으로 지키는 것과, 어쩔 수 없이 고백성사를 보지 않으려고 지키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원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충실하게 따르려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규율과 법은 최소한의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의 실천이고, 이웃에 대한 나눔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평화방송에서 하는 미사를 보는 것도 합당한 미사인가?’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헌금을 하지 않고, 성체를 영하지 못하니까 합당한 미사참례가 아닐까요? 말씀의 전례와 사제의 강론을 들을 수 있고, 마음으로 함께하니 온전한 미사참례일까요? 이 또한 마음의 문제입니다. 성당에 가는 것이 귀찮아서, 편안하게 집에서 방송미사를 참례한다면 그것은 참된 미사참례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성당에 갈 수 없어서 방송으로 미사에 함께한다면 그것은 주님께 대한 충실한 마음이고, 주님께서는 그렇게 미사에 함께하는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나약하기 때문에 교회를 통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교회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신앙생활을 위한 많은 법과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법과 규칙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것들을 드러내는 수단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것을 드러내지 못하는 법과 규칙은 오히려 참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도록 속박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여성, 죄인, 병자, 이방인’은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참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율법과 규율을 다 지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분들에게도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선포는 ‘기쁜소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것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자비를 베풀고,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하느님 나라는 ‘여성, 죄인, 병자, 이방인’에게도 똑같이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모든 장벽들을 허물고 싶어 하셨습니다.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모든 율법과 계명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율법과 계명은 울리는 징과 같습니다. 사랑이 있어야 율법과 계명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