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8주간 토요일

2010. 5. 29. 오전 7:4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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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저녁 8시에는 ‘성모의 밤’ 전례가 있습니다. 성모 성월을 지내면서 성모님께 우리들의 사랑을 드리고, 성모님의 도우심을 청하며 본당 공동체가 함께 찬양을 하며 감사를 드리는 밤입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하셔서 5월의 따뜻함을 함께 나누시기 바랍니다.

예전에 어떤 본당 신부님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묵상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은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언자, 엘리야, 죽은 세례자 요한’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베드로 사도는 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 사도의 대답은 예수님의 마음에 들었고, 베드로 사도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성당 마당에 나가셔서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얘들아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니!’ 신부님께서는 나이가 많으셨기 때문에 아이들은 ‘할아버지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아이들이 성당에 다니질 않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성당 유치원에 가셔서 아이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아이들아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니!’ 그러자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아이가 ‘본당 신부님이요!’라고 대답하길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대머리요!’ 신부님은 머리숱이 거의 없는 대머리였기 때문에 아이는 그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질문에 정확한 대답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저는 성서에서 말하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성서는 예수님에게서 대해서 4가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첫째는 어린양입니다. 어린양은 유대인들의 종교관습에 의하면 죄를 대신하여 희생하는 제물입니다. 그 유래는 모세의 출애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셨고, 이스라엘 백성의 문지방에는 ‘양의 피’를 바르도록 하셨습니다. 희생된 양의 피는 하느님의 재앙을 막아 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희생된 양의 피를 보시고 건너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파스카’입니다. 성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분이 우리 인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신 ‘어린양’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린양은 순결해야 하고,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흠이 없고 순결하신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고난 받는 야훼의 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번에 걸친 유배생활을 하였습니다. 유배생활은 힘들고 괴로운 것입니다.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고, 낯선 곳에서 힘들게 벌어야 했고, 핍박과 조롱을 받아야 했습니다. 예전에 북간도로 떠나야 했던 우리 선조들을 생각하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고난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유배생활이 끝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와서 참된 예배를 드릴 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유배가 끝나면 사막에 샘이 솟아나고, 늑대와 어린양이 함께 뛰놀고, 사자와 어린이가 함께 춤을 출 것이란 생각을 하였습니다. 고난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는 반드시 하느님께서 보상을 해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기도를 하였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세 번째는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처럼 ‘사람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복음서를 보면 ‘사람의 아들’이란 표현을 자주 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란 무슨 뜻인가요? 마지막 날에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모든 이를 심판하는 사람입니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시고, 참된 생명의 길을 알려 주시는 분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유한한 틀을 깨시는 분이고, 모든 것을 정리해 주시는 분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에서 사도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부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네 번째는 요한복음 사가가 이야기 하였듯이 ‘예수님은 말씀’이셨습니다. 말씀은 태초부터 있었고, 말씀은 하느님이셨고, 말씀은 진리였습니다. 요한복음 사가는 예수님에 대해서 아름답게 찬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은 맨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만물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겨났고 생겨난 것치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빛이 어둠 속에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말씀이 참된 빛이셨으니 그 빛이 세상에 오시어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이는 예수님에 대한 엄청난 신앙 고백입니다.

우리는 성서에서 전해주는 예수님의 4가지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분은 한 없이 약하고, 순결하신 어린양이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희생되신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겸손함과 정결함, 순수함’을 배워야 합니다. 그분은 모든 고난과 고통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죽음의 순간에서도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었고,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에서 참된 신앙의 길을 배워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한 구원자이시고, 그분이 걸어가신 길이 생명의 길이였으며, 그분의 권위는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주어지고 있음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또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구원자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댓글 1

  • 2010년 5월 29일 오후 10:18

    아멘!

매일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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