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하루 종일 비가 내리던 5월 18일 ‘신비로운 장미 꾸리아’ 소속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 겟세마니 피정의 집으로 피정을 갔습니다. 피정의 집은 강원도 인제의 아름다운 강가에 있었습니다. 피정의 집 원장이신 배광하 신부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해서 강의를 해 주셨습니다. 오늘부터 3일간은 신부님의 강의를 요약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신부님께서는 강의 주제로 바오로 사도의 고린토 전서를 읽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바란 표징도 아니고, 그리스인들이 찾았던 지혜도 아니요, 십자가에 처형되신 그리스도’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표징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처형되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이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요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을 막론하고 하느님의 능력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하느님이 어리석다 치더라도 사람들보다 지혜로우시며 하느님이 약하다 치더라도 사람들보다 강하시기 때문입니다. 형제 여러분,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 자신을 살펴보시오. 세속의 몸으로는, 여러분 중에 지혜로운 이도 많지 않으며 유력한 이도 많지 않고 가문이 훌륭한 이도 많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오히려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택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을 택하셨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잘난 체하는 것들을 무력하게 하시려고 세상에서 미천한 것과 멸시받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고린토 전서 1,22- 28)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도 기적을 보았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도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남들은 살리면서 자기는 못 살린다. 내려와 보라. 우리가 믿겠다.’ 프랑스 루르드에 가면 성지가 있습니다. 루르드에 가면 기적의 물이 흐릅니다. 지팡이를 들고 온 사람들이 치유되어서 지팡이를 걸어 놓고 갔습니다. 각양각색의 지팡이가 있습니다. 벨라뎃다 어린이가 성모님을 처음 목격했던 장면을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성모님의 발현, 동굴에서 목격. 성모님과의 대화를 식구들에게 이야기 하지만, 식구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주일학교 친구들도 믿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본당신부가 들었습니다. 본당신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내일은 내가 가서 성모님 이름이 어떻게 되시는지 물어 보라!’다음날 성모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성모님은 나의 이름은 ‘임마쿨레 콤셉시용’이라고 하였습니다. 벨라뎃다의 이야기를 들었던 본당신부님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무릎을 꿇고 기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성모님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이라고 하셨고, 이런 교리를 어린아이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당 신부와 교우들도 성모님을 만났고, 수천수만의 사람이 성모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 중에 성인품에 오른 사람은 몇 명인가? 직접 본 사람 중에서 성인에 오른 사람은 벨라뎃다 성녀 한 명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기적을 찾아서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기적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3차의 선교여행 중에 여러 도시를 다녔습니다. 고린토, 에페소, 테살로니카 등의 도시에서 쫓겨났습니다. 반대자들에 의해, 같은 동포인 유대인들에 의해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떠난 도시가 있습니다. 그곳은 아테네였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당시 세계에서 ‘철학, 문학, 신학, 예술’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기에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과학이 발달한 현대 세계에서도 우리는 우주에 별이 몇 개나 있는지, 우주의 크기가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은하, 은하단, 초 은하단, 초초 은하단’까지 발견하였습니다. 초초 은하단에 있는 별을 1초에 100개씩 셀 수 있을 때, 2조년이 걸려야 별의 숫자를 다 셀 수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아는 것은 작고 보잘 것 없습니다. 우주라는 광대한 공간에 지구라는 별은 먼지보다 작으며, 먼지 보다 작은 지구에서 분단된 남쪽 나라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또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을까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미쳤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그것은 참된 신앙이 아니라고 말을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금요일은 금육제로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의외로 강의를 들었던 분들 중에서 매주 금육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금요일에 고기 먹을 이유가 생깁니다. 친구들이 금요일에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할 때, 나는 성당 다니기에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면 친구들은 농담으로라도 이렇게 말을 할 것입니다. ‘성당에 미쳤군!’해외여행을 가려고 동네사람들과 적금을 부었습니다. 날자가 정해졌는데, 4월, 성금요일, 부활 성야, 부활 대축일 기간이었습니다. ‘천주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니, 난 안 간다. 잘 놀다 와라. 내가 낸 돈으로 맛있는 거 사 먹으세요.’라고 말한다면 마을 사람들도 ‘성당에 미쳤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살펴봅니다. 세상 사람들만 양다리를 걸치고, 야합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들 중에도 ‘양다리 신앙, 야합적인 신앙’을 보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적, 인간적인 지식이 아니고, 십자가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믿음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발로 하는 것입니다. 그저 가슴으로 믿고, 손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려면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적, 세상의 지혜를 찾을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바보, 미쳤다.’는 소리를 감수하는 우리들,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살 때, 우리는 참된 신앙인 진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