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어린이 날입니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지난달에 본당 만남의 방(요셉 홀)에 무선 인터넷이 가능한 시설을 하였습니다. 선을 연결하지 않아도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들을 요즘은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들이 ‘리모컨과 핸드폰’입니다. 아무런 선이 연결되지 않았어도 우리는 전자제품을 사용할 수 있고, 핸드폰으로 공간의 제약을 거의 받지 않고 상대방과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입니다.
지나 주일에 신도부레뉴 아파트에 가정방문을 다녀왔습니다. 이제 60일 된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전입을 왔습니다. 부모님께서 가까이 계시는 곳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손자를 돌보면서 한 가지 부탁을 하였다고 합니다. ‘신부님을 모시고 집축성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정 방문을 하니, 따님께서 제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집에서도 고백성사를 볼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당연히 줄 수 있다고 하였고, 따님은 부모님이 가장 좋아 할 것 같은 일은 다시 성당에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고백성사를 본 따님은 이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따님은 다시 신앙 안에서 하느님과 즐거운 만남을 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따님이 신앙생활을 다시 할 수 있도록 기도를 하셨다고 합니다. 자신의 아이를 돌봐 주시는 부모님께서 좋아하실 선물을 마련한 따님께도 주님의 사랑이 가득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안타까운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한 형제님께서 교리시간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교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세례를 받기 며칠 전에 마음이 상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세례를 받는 동기가 다른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이었다고 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으려 했던 형제님은 당분간은 세례를 받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10년 동안 형제님을 위해서 기도하였던 아내도 있었고, 대부를 서기 위해서 형제님과 만나 대화를 하신 교우분도 있었고 세례식 후에 드릴 선물도 모두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마음이 닫힌 형제님께서 다시금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여서 세례를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본당 마다 사정이 다 다르지만 어떤 본당은 미사가 시작되면 성전 문을 닫아버린다고 합니다. 다른 미사시간에 참례를 하라는 뜻입니다. 간혹 미사 시간에 늦게 들어오는 교우들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신경이 쓰이기도 합니다. 미사시간 10분 전에는 성전에 도착해서 기도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전을 닫아 버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가는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어렵게 성당을 찾아온 예비자들이 있습니다. 이제 막 교리를 시작하는데 ‘열심히 하지 않을 거라면 지금 포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라고 말을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물론 열심히 교리를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열심히 하지 않을 거라면 포기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것이 최선의 말이었는지는 생각해 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관습과 율법은 중요합니다. 그것이 조직을 강하게 하고, 하나로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포도나무는 가지에 끊임없이 양분을 전해 줍니다. 가지를 나무라거나,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잘라버리지 않습니다. 다음 해를 위해서 기다려 줍니다. 그리고 다시 양분을 전해 줍니다.
율법과 관습, 규칙과 질서로 묶여지는 신앙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 인내와 관용으로 묶여지는 신앙이라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