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

2010. 4. 29. 오전 5:32:02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4월 말인데도 체감온도가 영하권이라고 합니다. 과일농사를 하시는 분들은 꽃술이 얼어서 큰 걱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봄에 싹이 나야지 여름에 뜨거운 햇살을 받고, 가을에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오늘 천안함 희생자들을 위한 영결식이 있습니다. 차가운 바다에서 미처 피지 못하고 져버린 꽃처럼 희생된 승조원들께서 천상에서는 영원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과일농사를 하시는 분들에게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보상해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천안함의 희생자들을 위해서 ‘전사자’에 준하는 예우를 해 드리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들 모두는 한 몸인 것처럼 함께 아파하고, 함께 위로를 드리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우주라는 망망대해에서 지구라는 작은 조각배를 타고 함께 여행을 하는 동료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지난 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현리에 있는 형제님의 집에서 머물렀습니다. 형제님께서는 예쁘고 아담한 집을 지으셨습니다. ‘성직자와 수도자’들께서 잠시 머물면서 피정을 하고, 쉴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집에는 방명록이 있습니다. 방명록에는 그 집에 머물다간 수도자, 성직자들께서 고마움의 표시로 글을 적어 놓으셨습니다. 아무런 이유나, 조건도 없이 하느님을 위해서 일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쉼터’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어제는 이촌동에 있는 ‘쌀국수’집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30년 전 고등학교 때 주일학교를 함께 다니던 친구가 운영하는 곳입니다. 비가 오는 굿은 날씨에도 저를 위해서 직접 가게로 왔습니다. 단순히 국수를 파는 것이 아니라,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우정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친구이기에, 성직자이기에 그렇게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제 저녁에는 선배 사제께서 저에게 필요한 운동기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사목을 열심히 하기 위해서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직접 골라주셨습니다. 후배를 아끼고 사랑하는 선배 사제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꼭 성직자나 수도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을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대하고 우리들의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어제 현리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 자매님께서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어디까지 가시는지 말씀을 드리고, 청평까지 모셔다 드렸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분께서는 무척 고마워하셨고,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의 시간과 자리를 내어드렸습니다. 함께 한다는 것, 나의 시간과 재물을 나눈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잘 아는 분에게, 나에게 보답을 해 줄 것 같은 사람에게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처음 보는 분에게, 잘 모르는 분에게는 쉽게 나누기가 어렵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사도 바오로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했고, 잡아가두었습니다. 스테파노가 순교할 때는 그곳에 스테파노의 죽음을 지켜보았습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체험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전하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자신들을 박해했던 바오로 사도를 진심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에게 사랑을 주었고, 함께 일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교회 공동체의 가족이 되었고, 이방인들을 위해서 선교활동을 하였습니다.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만이 있는 곳은 아닙니다. 허물이 있는 사람도 있고, 다시 잘못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순간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언쟁을 벌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은총의 빛으로 교회를 비추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부족한 사람들이지만 주님을 믿고 따르면서 서로 아껴주고, 사랑할 때 우리의 부족함도 우리의 허물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우리의 허물을 씻어내는 가장 큰 방법은 바로 겸손함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았을 때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오늘 내가 만나는 분들을 주님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생각하며 정성껏 우리들의 마음을 다해서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댓글 1

  • 2010년 4월 29일 오후 3:56

    아멘!

매일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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