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3주간 화요일

2010. 4. 20. 오전 5:58:06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장애인을 위한 날’입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장애인이 된 분들이 있고,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것은 조금 불편할 뿐이지, 그것이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더불어 가는 사회에서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장애는 도울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기에 치료도 가능합니다.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사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신 ‘김길수’ 교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참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자신을 영혼의 문둥병자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저 자신도 공감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이고, 상처 입은 치유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읽은 글이 있습니다. ‘나귀와 십자가’입니다. 어느 마을에 아주 오래된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해마다 십자가 현양 축일이 되면 사람들은 나귀 위에 십자가를 올려놓고 마을을 돌았습니다. 사람들은 오래된 십자가가 지나가면 그 길에 깊은 존경의 표시로 절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귀는 그 존경의 표시가 자신에게 하는 줄 알고 우쭐하여 앞발을 높이 들다가 마을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십자가를 떨어트리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나귀는 십자가를 모시는 영광스러운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는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발생하였습니다. ‘천안함의 침몰, 군 헬기의 추락, 공군 비행기의 추락, 전방에서의 총기 사망사고’와 같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질서와 명령이 중요하고, 기강이 생명인 군에서 이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놓고 우려와 걱정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한 스님은 유력 정치인이 종교에 개입하였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이런 말이 사실이라면 또한 커다란 문제입니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이권을 챙기고, 부정한 일들을 눈감아 준다면 그 또한 큰 문제입니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장애이고, 분수를 모르던 나귀와 다를 바 없는 일입니다.

오늘 스테파노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들의 죄를 묻지 않고,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참된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좀 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능력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생명의 빵이라고 하셨고, 자신을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서 기꺼이 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교만, 욕심이라는 장애를 넘어서야 합니다. 우리는 희생과 봉사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럴 때 사랑으로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댓글 1

  • 2010년 4월 20일 오후 5:51

    용서와 화해, 말로는 쉬운데 실천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복음화 학교 3단계에 접어들면서 신앙생활이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계약공동체! 나 자신을 내어 주는 삶, 어렵네요. 아마 기도가 부족한 탓이겠지요. 스테파노의 영성을 닮고 싶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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