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 저녁에는 ‘본당의 ME 부부 모임’이 있었습니다. 부부는 서로 잘 아는 것 같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방법으로 알려고 하기 때문에 때로는 높은 벽에 막힌 것 같은 느낌을 갖기도 합니다. 어떤 자매님께서 남편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여보! 나 감기에 걸렸나 봐요? 기침도 나고, 열도 나요!’ 남편은 아내에게 이렇게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 약 사먹어요!’ 아내의 표정이 밝은 것 같지 않아서 남편은 또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럼 병원에 가던가요?’ 사실 아내는 약을 사먹을지 몰라서 남편에게 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병원에 갈지 몰라서 남편에게 말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그 말을 듣고 따뜻하게 위로를 해 주기를 원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아내는 이런 대답을 원했을지 모릅니다. ‘요즘 너무 과로 했나봅니다. 나도 매일 늦게 들어 왔고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가 봐요. 내가 약국에 가서 약을 좀 사오지요.’ 그리고 남편이 아내의 이마에 손을 대보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보듬어 주기를 원했을지 모릅니다.
어제 부부 모임에서 대화의 주제는 ‘원하지 않는 칭찬을 했을 때, 나의 느낌은 무엇인가?’ 였습니다. 한 형제님께서 신혼 초에 아내가 만들어 준 냉면을 먹고 나서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다시는 냉면 만들어 주지 마요!’ 아마 무척 신비로운 맛이었나 봅니다. 신혼 초에 형제님은 그 말은 한 후에 한동안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웬만하면 좋게 말을 하는데 지금도 가끔은 본마음을 읽힐 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도 사목국에 있을 때, 주교님과 어르신 신부님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제가 원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도, 주교님이나 어르신들이 바라는 것은 저도 좋다고 말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사실 저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을 때가 있었지만 어른들의 맘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고, 저의 성격이 바른 말을 그대로 하는 성격도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유대인들과 사도들은 서로 생각이 많이 달랐습니다. 같은 유대인이었고, 같은 전통과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지만 유대인들은 사도들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의 체험한 ‘예수님’을 전하려고 하였고, 유대인들은 사도들의 말을 알아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전통과 자신들의 신념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 대화를 하지만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남과 북’의 대화도 그렇고, 거의 모든 일에 합의를 보지 못하는 정치인들도 그렇습니다. 저도 동료들과 대화를 할 때 듣기는 하지만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선입견 때문에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대화를 위한 자세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경청’입니다. 엄마는 말을 못하는 아이의 표정과 몸짓만을 보고서도 아이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온 마음을 다해서 아이의 눈에 맞추기 때문입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눈높이를 맞추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셨지만 우리들을 위해서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언어로 눈높이를 맞추셨습니다.
대화가 되지 않을 때, 혹시 내가 나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자존심과 욕심으로 나의 귀를 막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했으면 합니다. 나의 선입견으로 내가 듣고 싶은 것들만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지요?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