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순금을 도금하고 백합을 색칠하는 것, 제비꽃 위에 향수를 뿌리는 것, 얼음을 매끄럽게 또는 색 하나를 더 무지개 위에 입히는 것, 다만 장식을 위해 빛으로 아름다운 천상의 눈을 쫓는 것은 낭비이며 어리석은 지나침이다.”
공자는 ‘過猶不及’이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입니다. 공자의 제자들이 다른 제자인 자하와 자상을 두고 질문을 합니다. 둘 중에 누가 더 어집니까? 그때 공자는 말을 합니다. 자하는 지나치고, 자상은 미치지 못한다. 그러자. 제자들이 또 질문을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더 어질다는 것입니까? 공자는 말합니다. 둘 다 똑같다. 셰익스피어와 공자는 비슷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천안함의 침몰을 두고서 우리사회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미리 가정을 해서 예단하고, 판단하며, 지나치게 상세하게 언론에서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차분하게 원인을 규명하고, 희생자에 대한 장례를 치룬 다음에 책임을 규명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교회를 박해하던 사울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사울에게 새로운 사명을 알려주십니다. 사울은 이제 회심하여, 교회의 커다란 기둥이 됩니다. 우리의 상식과 생각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방법입니다. ‘왜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을 복음의 사도로 만드셨는지?’를 묻는 것은 지나친 태도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뜻을 온전하게 따르는 것이 우리들의 신앙입니다. 그릇이 그릇을 만든 사람에게 나는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묻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를 위해서 내어 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이 전 존재를 기꺼이 내어주시는 예수님께 ‘왜 그렇게 하시는지 묻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오늘 사람들은 서로 다투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온전하게 모든 것을 내어 주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고 다투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들도 주님의 뜻을 따라서 우리의 사랑과 우리의 재능을 기꺼이 이웃들에게 나누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행복의 시작이고, 영원한 생명의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