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부님 강의2

2010. 5. 20. 오전 7: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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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배 신부님의 두번째 강의를 요약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마르띠니 추기경은 바오로 사도의 영성을 공부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힘들고 어려울 때면 바오로 사도가 순교하신 곳에 가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어느 날 바오로 사도가 순교하는 마지막 순간에 어떤 생각을 했을지 묵상하였습니다.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을 체험한 것, 광야에서 14년간의 고행, 사도들과의 만남, 죽음의 고비를 넘긴 선교여행, 유대인들과 사도들의 불신, 자신이 기록한 서간’등을 생각하였습니다. 과연 바오로 사도가 마지막으로 죽음의 순간에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마르띠니 추기경은 밀레토스에서 에페소의 원로들을 불러서 하였던 바오로 사도의 마지막 인사를 생각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아시아에 발을 들여놓은 첫날부터 여러분과 함께 그 모든 시간을 어떻게 지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유다인들의 음모로 여러 시련을 겪고 눈물을 흘리며 아주 겸손히 주님을 섬겼습니다.(사도행전 20,18-19)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의 교우들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에페소에서는 3년간 머물렀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던 바오로는 에페소의 교우들을 보고 싶어 했지만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에페소 근처의 밀레토스라는 곳에서 원로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루살렘으로 가면 잡힐 것을 알았고, 죽음을 예감했기 때문입니다. 마르띠니 추기경은 ‘가장 사랑했던 에페소 교우들에게 하였던 바오로 사도의 유언’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유언은 4가지 였습니다.

첫째는 ‘함께’ 하였다는 것입니다. 비오는 날, 비를 맞고 걸어가는 친구가 있을 때 어떤 친구가 가장 도움이 될까요? 함께 우산을 써 주는 친구도 있고, 우산을 구해서 주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도움이 되는 친구는 우산을 버리고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친구일 것입니다. 친구의 아픔, 친구의 외로움을 함께 느껴주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모든 권한과 권위를 벗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약하고, 두려운 삶의 길을 걷는 우리와 함께 걸어가셨습니다. 바오로 사도역시 에페소의 교우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자서 할 수 있었지만 사도들과 함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책을 좋아하고, 기도를 열심히 하며,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제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본당 신부는 신자들의 기쁨과 슬픔, 고통과 희망을 함께 해야 합니다.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것이 본당 신부의 역할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를 섬겼습니다.’바오로 사도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언어에 능통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율법과 로마의 문화도 잘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의 능력을 믿었고, 교만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면서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들을 쓰레기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그리스도가 내 생의 전부입니다.’ 만일 바오로 사도가 자신의 권위를 내세웠다면 에페소의 교우들과 그렇게 뜨거운 작별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본당에서도 우리는 그리스도를 섬겨야 합니다. 특히 전임 단체장들은 후임 단체장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합니다. 말로는 협조한다고 하면서 뒤에서 조정을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제들은 전에 있던 본당에는 가능하면 가지 않습니다. 후임 신부님께서 사목하는데 불편을 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눈물을 흘렸습니다.’바오로 사도는 아주 냉철하고 저돌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면서 감성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서간을 읽어보면 바오로 사도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민자들을 위한 피정을 할 때가 있습니다. 고향을 떠나, 가족들을 떠나서 낯선 타국 땅에 사는 분들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여도 마음에는 ‘고독과 외로움’이 있습니다. 타국 땅에서의 ‘두려움과 불안’이 있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피정을 하면서 안수를 하면 모두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 풀어 놓을 수 없었던 가슴의 응어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매님들은 신앙 안에서 위로와 희망을 찾기 쉽습니다. 그것은 감성적이기 때문입니다. 감성적인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신앙을 나무라셨습니다. ‘미술, 음악, 문학, 예술’은 뜨거운 감성이 있을 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신앙도 예수님께 대한 열정과 감성이 있어야 성숙할 수 있습니다.

넷째는 ‘겸손’입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땅으로 내려온 사람만이 하늘로 오를 수 있습니다.’군대에 가면 포복훈련이 있습니다. 철조망 아래에는 진흙탕입니다. 철조망 위로는 실탄이 날아다닙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군인은 낮은 자세로 철조망을 통과해야 합니다. 머리를 들면 철조망에 다치기 쉽고 옷을 찢겨 질 수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총알에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낮은 자세로 기어가야 합니다. 삶의 시련도 그렇습니다. 결국은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겸손하게 땅을 향하면 언젠가 하늘로 들어 높여질 것입니다. 세상은 높은 곳을 향해서 끊임없이 오르려 합니다. 자녀를 공부시키는 것도 그렇고, 열심히 일을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높’자는 거꾸로 하면 ‘푹’자가 됩니다. 높은 곳만을 바라보지 않아야 합니다. 내 삶이 거름이 되어 다른 이가 꽃을 피울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참된 신앙은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입니다. 가슴을 열고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겸손하게 땅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댓글 1

  • 2010년 5월 20일 오후 1:21

    피정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좋은말씀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높/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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