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입니다. 저는 8월 23일 날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있던 수녀회로 첫미사를 갔었습니다. 그때가 1991년 8월 28일입니다. 새벽에 수녀회로가서 미사를 드렸는데, 그날 미사가 오늘 전례인 ‘세례자 요한의 수난 기념일’이었습니다. 많은 수녀님들 앞에서 미사 주례를 하고, 강론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떨리지 않게 강론을 하지만, 그때는 무슨 말을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떨리고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강론의 주제는 ‘주연과 조연배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1,000만 명이 넘게 보았다는 ‘해운대’의 주인공은 ‘설경구와 하지원’입니다. 하지만 두 명의 주인공만으로는 영화를 2시간 넘게 이끌어 갈 수 없습니다. ‘박중훈, 엄정화’와 같은 조연이 있었기 때문에 영화는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영화중에 1,000만 명이 넘게 보았던 영화들이 5개가 있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왕의 남자, 괴물 그리고 해운대’입니다. 이 모든 영화는 주인공들의 화려한 연기가 있었지만, 뒤에서 영화를 드러나게 해주던 조연들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관객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배우들이 처음부터 주연배우를 하고, 훌륭한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대사를 잊어버리고, 말이 잘 나오지 않고, 행동이 어색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꾸준한 연습과 노력으로 카메라 앞에서 떨지 않게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2002년부터 교구 사목국에서 일을 했습니다. 본당에 있을 때는 주일미사 강론 10분만 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목국에서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2시간씩 강의를 해야 했습니다. 내용도 문제지만, 2시간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처음 2시간 강의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한참을 이야기한 것 같은데 시간을 보니 15분밖에 지나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나고, 무슨 이야기를 계속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당황했었습니다. 3년이 지난 2005년도에는 떨지도 않으면서 2시간씩 강의를 편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자꾸 하니까 요령도 생기고, 신자들의 반응을 살필 수 있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지금도, 다른 본당이나 단체에 가서 강의를 하려고하면 여전히 걱정은 됩니다. 막상 강의를 하면 마음이 편해지는데, 강의를 하기 전까지는 걱정을 하는 저 자신을 봅니다. 오늘 제1독서는 큰일을 앞둔 사람들에게, 평소와는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함께하고 있음을 믿으면 우리는 두려움 없이 주어진 사명을 충실하게 할 수 있습니다.
본당에서는 새로운 직책을 맡게 되는 분들을 봅니다. 직책을 맡기 전에는 두려워하고 걱정들을 하지만 곧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말씀의 은혜를 주시고, 분별의 지혜를 주시며, 어려움을 이겨낼 용기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세례자 요한은 주연은 아니지만, 조연의 역할을 충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생활을 했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자 요한에게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을 따라서 제자가 되었고, 세례자 요한을 오시기로 한 메시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는 앞으로 오실분의 길을 준비하러 왔습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습니다.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하고, 저는 점점 작아져야 합니다. 저기 하느님의 어린양이 오신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가는 것을 막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의자’를 생각합니다. 성당에 와도, 식당에 가도, 차를 타도, 집에 가도 우리는 의자를 볼 수 있고, 아무 생각 없이 의자에 앉습니다. 의자들은 우리들의 지친 몸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비워줍니다. 의자가 없다면 우리는 참으로 불편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 의자를 생각하며, 예수님을 위해서 기꺼이 ‘의자’가 되어준 세례자 요한을 생각합니다. 우리들 또한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기꺼이 남을 위한 ‘의자’가 되어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들의 어머니, 본당의 많은 봉사들은 가족들을 위해, 하느님을 위해 사랑의 의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