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예전, 수학 시간에 차원이라는 말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1차원은 점입니다. 2차원은 선입니다. 3차원은 면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3차원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2차원의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3차원의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3차원 세계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은 바로 하늘을 나는 비행기입니다. 3차원의 세계를 살아가면서 인류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습니다. 3차원까지는 주로 공간에 한정된 문제입니다.
하지만 4차원을 넘어서면 시간까지도 조절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아직 공상과학과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지만 4차원의 세계가 시작되면 우리는 공간은 물론 시간까지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4차원의 세계까지 상상하지만 그 너머 5차원, 6차원의 세계도 생각할 수 있으리라 예측은 하고 있습니다. 한번뿐인 우리의 삶도 선택에 따라서 무한한 삶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을 거란 말을 합니다. 마치 연극에서 배우는 다양한 역할을 맡아서 연기를 하듯이 말입니다.
어릴 때는 라디오를 주로 들었습니다. 저녁이면 라디오를 통해서 뉴스를 들었고, 아침이면 ‘아차부인 재치부인’과 같은 프로를 듣기도 했습니다. 모든 정보는 라디오를 통해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축구경기도, 사라예보에서 승리한 이 에리사 선수의 우승소식도 라디오에서 들었습니다. 불과 50년 전, 우리 모두는 라디오를 통해서 모든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흑백텔레비전이 나왔습니다. 저는 주로 만화영화를 흑백텔레비전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이것은 라디오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습니다. 단순히 듣는 것과는 달리 움직이는 장면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80년대부터 컬러텔레비전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흑백텔레비전과는 또 다른 차원의 볼거리였습니다. 배우들이 입는 옷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고, 꽃과 동물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요즘 우리는 ‘디지털’이라는 옷으로 갈아입은 텔레비전, 훨씬 얇아지고 선명해진 텔레비전을 대하게 됩니다. 바로 눈앞에서 보는 것과 같이 선명해진 화면을 대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3차원의 텔레비전도 등장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이렇게 차원이 있습니다. 본능에 따라서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고, 삶의 목적과 가치를 따지지 않는 삶입니다. 다음은 감성에 따라서 사는 삶입니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울고, 웃는 삶입니다. 이것은 동물과는 다른 삶의 시작입니다. 다음은 이성에 따라서 사는 삶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설정합니다. 도덕과 계명이 있고, 仁義禮智와 같은 덕을 삶의 가치로 여기게 됩니다. 사람은 부끄러움을 알고, 겸손함을 알고, 자비로움을 알게 됩니다. 그 다음의 단계는 오성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4차원의 세계를 사는 것과 같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참된 나를 알고,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소유와 명예,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삶입니다. 하느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삶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바로 그와 같은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신앙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면서 또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기쁨과 평화 그리고 자유입니다. 어제 영결식이 있었던 김대중 토마스 모어 대통령도 신앙을 통해서 또 다른 세상을 보았고, 이제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살아가리라 믿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는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