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8월의 첫째 날입니다. 2009년 8월은 시흥5동 본당에는 특별한 달로 기억될 것입니다. 성당 입구에 ‘성모상’을 모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본당에 왔을 때, 몇몇 분들이 제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당 입구에 성모상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성모상을 모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성모상을 모시려면 비용이 들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지난 달 한 교우분이 제게 성모상을 봉헌하고 싶다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한번 해 보겠다고 말씀을 드렸고, 주보에 성모상 봉헌에 대한 공지를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성모상’ 봉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정성어린 봉헌을 해 주셨습니다. 드디어 내일 성전 입구에 성모상을 모실 터 작업을 합니다. 성모상은 8월 13일에 모시게 되었고, 축성식은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 있을 것입니다. 그날 11시 미사 전에 성전 입구에서 ‘축성식’을 하고, 미사를 봉헌할 것입니다. 이 좋은 날 여성 구역에서는 ‘국수잔치’를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혜이고, 하느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안식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제들은 10년 정도 사목을 하면 ‘안식년’을 신청하곤 합니다. 잠시 사목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휴식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그동안 못했던 공부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피정도 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저는 사제 생활 18년을 했지만 아직 ‘안식년’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안식년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예전에 천호동에 계시던 신부님께서 5년 동안 임기를 마치고 ‘안식년’을 가게 되었습니다. 떠나는 날 미사 때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이제 안식년을 가게 되었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성당 마당에서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한 할머니께서 신부님께 심각한 표정으로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신부님 안 됩니다. 안식년이 어떤 년인지 모르지만 안식년하고 가는 것은 안 됩니다!’ 할머니께서는 신부님의 설명을 잘못 이해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주관적인 생각으로 상대방의 진실한 마음을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고정관념과 편견은 우리가 버려야 할 생각의 ‘틀’입니다. 그럴 것이라는 예측은 오해를 초래할 때가 많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면 많은 오해들은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법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노인이 빵을 훔친 죄로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재판관은 어째서 빵을 훔치게 되었는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노인은 자신은 3일 동안 굶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서 빵을 훔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재판관은 벌금 10,000원을 판결하였습니다. 그러자 방청석에서는 재판관의 판결이 너무 가혹하다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자 재판관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벌금 10,000원은 판사인 제가 내는 돈입니다. 저는 그동안 이렇게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너무 잘 먹었고, 남은 음식도 생각 없이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저와 비슷한 생각이 있으시면 벌금 10,000원씩 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방청석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10,000원씩 벌금을 내 주었고, 노인은 그날 모아진 돈으로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고,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미리 준비하였던 세례자 요한은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였고, 많은 표징을 보여 주었지만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억울함을 억울함으로 갚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원망을 원망으로 갚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분노를 분노로 갚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용서하였고, 평화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을 죽였던 세력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세력은 지금 모두 잊혀졌습니다. 하지만 용서를 하였고, 평화를 위해 기도했던 교회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고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억울하고, 속상하고, 미치고 환장할 것 같은 일들을 만납니다. 그것을 똑같은 방식으로 되갚으려하면 참된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용서와 이해, 사랑과 평화만이 나를 참된 안식에로 이끌어 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