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역사를 배웁니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의 실패를 교훈삼아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과거의 성공을 교훈삼아 현재의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서입니다. 먼 길을 가는 배가 난파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외적인 것입니다. 사나운 파도가 밀려오거나,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는 경우입니다. 거센 폭풍우를 이겨내기에는 배가 작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내적인 것입니다. 배 안에 작은 균열이 있으면 거센 파도가 밀려오지 않아도,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지 않아도 배는 서서히 침몰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비슷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의 침략을 받은 것은 대륙으로 뻗어나가려는 일본의 야심과 일본 국내의 잠재적인 반란 세력을 전쟁을 통해서 제거하려는 일본 지도부의 야망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율곡 선생께서 주장했던 것처럼 ‘10만 명’의 군사를 양성하고 일본의 침략에 대비해서 준비를 했다면 그렇게 일본에게 침략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조선은 외적인 환경 때문에도 침략을 당했지만, 내적인 면에서도 대비를 못하였기 때문에 침략을 당하였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비슷한 것들을 봅니다. 우리는 외적인 이유 때문에 삶이 고달프고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IMF'와 같은 ’국가부도‘의 시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실직의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질병 때문에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외부에서 오는 것들도 있지만 우리 자신에게서 오는 것들도 있습니다. 불평과 원망, 불신과 두려움은 마치 항해중인 배에 균열이 생기는 것처럼 그래서 서서히 침몰하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을 하면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만나와 메추라기는 그들의 영혼까지 배부르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들은 영적인 충만함을 더욱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로 5000명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잠시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참된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굶주린 이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까지 받아들였다면 예수님을 향해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시장에 가면 먹을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선한 야채, 싱싱한 고기, 맛있는 반찬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좋은 음식들을 쉽게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것이 바로 음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운 여름 뜨거운 햇빛아래서 땀을 흘리는 농부들의 수고가 있어야 우리는 비로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빵을 배불리 먹었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더욱 뜨거워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빵을 많게 해 주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릴 때, 우리들 또한 주님처럼 빵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한 조각의 빵을 나누어 줄 수 있을 때, 우리의 신앙은 점차 깊어지는 것입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는 신앙에서 달의 본 모습을 볼 수 있는 신앙에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저는 내일부터 여름 휴가를 다녀옵니다.
8월 14일까지는 복음 묵상을 올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녀와서 올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