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이냐시오’성인의 축일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예수회’의 창설자입니다. 예수회는 주로 교육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수도회입니다. 우리나라의 서강대학교는 ‘예수회’가 세운 학교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스페인의 로욜라라는 지방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직업은 군인이었지만,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한 후에 ‘그리스도의 생애’, ‘순교자의 꽃’과 같은 신심서적을 읽으면서 영적인 세계에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아주 아름다운 선물을 봉헌했습니다. 그것은 ‘영신수련’이라는 수련방법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군인이었기 때문에 ‘훈련’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악의 세력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이라는 책을 저술하였고, 그 책을 따라서 기도하면 영적인 힘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수도회와 신학교에서 이냐시오 성인의 ‘영신수련’을 통해서 8일 피정, 30일 피정을 하고 있습니다.
영신수련은 크게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주간에는 하느님의 사랑을 묵상합니다. 우리의 죄가 크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벌하지 않고 기다려 준다는 것을 묵상하게 합니다. 성서에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을 찾아서 묵상을 하고, 묵상한 것을 지도자에게 이야기 합니다. 둘째 주간에는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합니다. 그 중에서는 수난 이전의 공생을 묵상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 제자들을 어떻게 부르셨는지, 어떤 표징들을 보여 주셨는지를 묵상합니다. 셋째 주간에는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을 묵상합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은 예수님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나의 잘못을 대신해서 받는 수난과 고통임을 묵상합니다. 넷째 주간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묵상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발현하시고, 제자들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신다는 것을 묵상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주는 것이라는 알게 합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을 통해서 몇 가지 묵상거리를 알려줍니다. ‘두개의 깃발, 겸손의 3단계, 3가지 유형의 사람, 선신과 악신을 구별하는 규범, 식별의 방법’과 같은 것들입니다. 이와 같은 묵상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이냐시오 영신수련의 가장 큰 핵심은 ‘원리와 기초’입니다. 이 원리와 기초는 신앙생활의 핵심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의 ‘영신수련’을 잘 모른다고 해도, 이 원리와 기초를 알고 있으면, 우리는 신앙 안에서 바른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믿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태어났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 주셨다. 그러나 하느님을 찬미하는데 유익하면 그것을 사용하고, 하느님을 찬미하는데 유익하지 않으면 버릴 것이다. 이제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해서라면 부귀보다 가난함을 택할 수도 있고, 건강보다 질병을 택할 수도 있고, 장수보다 단명을 택할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이것이 원리와 기초의 내용입니다. 길을 잃어버리면 지도를 보아야 하듯이, 신앙생활이 힘들고 어려워질 때, 원리와 기초를 묵상하면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2001년부터 ‘영신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매년 1월에는 신학교에서 사제품을 준비하는 학생들과 함께 영신수련을 해 왔습니다. 학생들이 묵상하는 것을 들어주고, 학생들과 함께 지내면서 변해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욕심과 죄책감 때문에 힘들어 하는 학생들은 영신수련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느님과 함께 영적인 여정을 떠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기꺼이 기러기 아빠가 되기도 합니다. 자녀들의 성공을 위해서 희생을 감수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고, 구원을 받기위해서는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한 노력보다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의 손에 작은 가시가 박혀있으면 빼려고 노력을 합니다. 우리의 영혼에도 많은 가시들이 박혀있습니다. ‘분노와 원망, 시기와 질투, 욕심과 교만’의 가시들입니다. 이런 가시가 박혀있으면 우리는 참된 기쁨을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보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도 영적인 가시가 박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내 영혼의 쓰레기를 버리는 것, 이것이 바로 영신수련의 시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