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2009. 7. 15. 오전 11:23:33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는 비가 하루 종일 왔습니다. 비는 왔지만 안산에 있는 안산중앙병원엘 다녀왔습니다. 8구역 자매님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연도를 다녀왔습니다. 자매님의 남편은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어제 교우들과 함께 연도를 한 후에 고인의 가족들과 대화를 하는데, 남편께서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저도 이제 성당에 다니겠습니다.’ 안산까지 비가 와서 가는 길은 좀 힘들었지만, 성당에 다니겠다는 남편의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슬픔 중에 있는 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것이 커다란 선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검찰총장 내정자가 어제 인사청문회를 마친 후에, 사퇴를 하였다고 합니다. 능력과 재능은 있지만, 검증과정에서 도덕적인 허물이 조금 드러났다고 합니다. 공직자는 재능과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에 맞는 도덕적인 책임도 함께 지녀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우리 신앙인들도 능력과 재능 이전에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먼저 보여야 합니다.

우리는 어제 오늘 모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모세는 구약성서에서 가장 위대한 예언자 중에 한명입니다. 히브리인들이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 태어났고, 이집트의 왕궁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생애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피해 다녔고, 광야에서 40년간 살았습니다. 광야에서 지내면서 모세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의 왕 파라오와 맞섰으며, 10가지 재앙을 보여 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불평과 불만이 많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광야에서 40년간 살았으며, 하느님께로부터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십계명은 지금도 모든 신앙인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히브리서에서 모세의 믿음에 대해서 말을 하였습니다. (11장 25-26) 바오로 사도는 모세가 위대한 예언자가 된 이유를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을 했습니다.

첫째로, 모세는 세상의 것 보다는 하느님의 것을 먼저 찾았습니다. " 일시적으로 죄의 향락을 누리기보다는 차라리 하느님의 백성과 함께 학대받는 길을 택했습니다."(25절) 사람들이 고난을 싫어하고 죄를 좋아하는 것은 고난에는 아픔이 따르고 반면에 죄악은 즐거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경우 그 삶은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아니요, 자기를 위한 삶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저버린 삶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것을 죄의 향락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즐기면서 편안히 살기를 원합니다. 기왕이면 신앙생활도 편안히 하기를 원합니다. 방학 때면 어디론가 훌쩍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고도 싶고 주말이면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재밌는 것을 보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 낙을 즐기느라고 한번뿐인 고귀한 인생을 허비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누릴 수 있는 죄의 향락이란 것이 언제까지나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모세는 이것을 잘 알았습니다. 모세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아서 언젠가는 시들고 마른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베드로 전서1:24). 모세는 잠시의 죄악을 누리느니 차라리 하느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의 길을 택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선택이었습니다.

둘째로, 모세는 하느님의 능력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치욕을 이집트의 보물보다 더 큰 재산으로 간주하였습니다. "(26절) 여기서 치욕이란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자 할 때 받게 되는 세상적 불명예나 수치를 말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고자 할 때 친구들과 자주 만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부모님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가족들에게 핀잔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모세도 노예가 되어 파라오의 공주의 아들로서 대우받을 때 상상도 하지 못했을 치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모세는 억지로 감당한 것이 아니라 큰 선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는 이 치욕을 이집트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선물로 여겼습니다. 모세는 눈에 보이는 이집트의 보화보다 하느님의 능력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실제로 모세는 노예백성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기까지 40년 동안 실로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고난을 고난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고난이 끝난 후 주님께서 그동안 주님을 섬기느라 남모르게 흘렸던 땀과 눈물을 닦아 주실 날이 오리라 믿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결단할 수 있고 결단할 수 있다면 이에 따른 고난을 사랑하며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환경을 탓하고 자신의 인간 조건을 탓하기에는 모세는 너무나 좋은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능력과 재능을 보기 전에 먼저 우리의 믿음을 원하십니다.


 

 

댓글 3

  • 2009년 7월 15일 오후 1:07

    모세는 눈에 보이는 이집트의 보화보다 하느님의 능력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아멘!

  • 2009년 7월 15일 오후 8:35

    아멘.

  • 2009년 7월 15일 오후 11:0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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