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5주일

2009. 7. 12. 오전 5:12:38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 저녁 7시에 예비자들의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어제 세례를 받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나또한 세례 때 받았던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돌아보며 참된 신앙인의 길을 걸어 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지난주에 적성 성당엘 다녀왔습니다. 제가 그곳에 있을 때 교우들과 함께 만들었던 식당, 태권도장이 아직도 그래도 있었습니다. 제 후임 신부님은 성당을 예쁘게 단장했고, 지금 신부님은 성당의 넓은 마당에 야생화를 심으셨습니다. 1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성당은 더욱 아름답고 풍요로워졌습니다. 농촌이라서 유동인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제가 있을 때 계시던 분들도 대부분 아직도 신앙 안에서 충실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제가 혼배 주례를 했던 청년이 미사에는 왔는데 제게 인사를 하지 않고 멀리서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청년의 형이 제게 말을 하더군요. ‘신부님! 동생이 미안해서 인사를 못 드리겠다고 합니다.’ 이유는 그 청년은 결혼해서 대전에서 살았는데 하는 사업이 잘 되지 않았고, 아내와도 헤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 청년의 부모님께 그와 같은 이야기를 예전에 들었습니다. 제가 가서 청년의 손을 잡고, 이제부터 열심히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을 해 주었습니다. 청년은 그제야 얼굴을 들고, 저를 보았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하늘을 보지 못 했던 사람이 이제야 하늘을 보는 것처럼 표정이 환해졌습니다. 적성 본당 교우들은 임진강에서 나는 고기를 잡아서 맛있는 매운탕을 준비해 주셨고, 농촌 분들의 넉넉한 마음과 인정을 듬뿍 받고 오셨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기르는 토끼 2쌍을 분양해 드렸습니다. 토끼들도 농촌에서 더욱 잘 자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당에 있는 토끼를 보면서 오히려 제가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토끼들은 아무리 먹이가 적어도 결코 서로 싸우는 법이 없었습니다. 힘이 세다고, 자기만 먹으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평화롭게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도 이렇게 서로 사이좋게 나누어 먹을 수 있다면, 굶주림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란 생각도 합니다. 우리는 동물들을 보면서 배울 것도 있고, 고쳐야 할 것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과학자들이 동물을 이용해서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벼룩은 자기 몸의 수십 배를 뛰어 오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자에 가두고 위에 투명한 유리판을 놓는 실험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벼룩이 뛰어 오르다가 유리판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몇 번 그렇게 부딪치고 난 후에, 벼룩은 바로 유리판 아래까지만 뛰어 올랐다고 합니다. 나중에 유리판을 치워도 벼룩은 더 이상 뛰어 오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유리판에 부딪힌 경험이 벼룩의 뛰어 오르는 능력을 감소시켰기 때문입니다. 부딪힌다는 두려움은 벼룩이 더 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벼룩만 그런 것은 아닌 경우를 봅니다. 체념과 상심은 우리의 능력을 감소시키게 됩니다. 좌절과 반복되는 고통은 우리의 자신감에 큰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은총을 주셨고, 가능성을 주셨지만 우리는 살면서 ‘나는 안 돼!’라는 병에 걸리게 됩니다. 적성본당의 청년도 자신의 모습을 제게 보여주기 힘들어 했습니다. 자신은 이미 실패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남편에게, 아내에게, 자녀들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에게도 이런 생각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몇 번 부딪히고, 실망을 하고나면 더 이상 좋은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고,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염소를 이용해서 이런 실험을 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염소는 무리의 우두머리를 잘 따르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무리의 우두머리 염소를 바닷가로 떨어트리면 다른 염소들도 따라서 바다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기 보다는 다수의 의견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음식점에서 음식을 고를 때, 이런 경험을 종종합니다. ‘난 아무거나 먹을게! 하지만 ’아무거나‘라는 음식은 없습니다. 딱 부러지게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시키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시키는 것을 따라서 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은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이 있었는데도 그것을 말하지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언론과 방송’을 장악하고 싶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언론과 방송’을 ‘제2의 신’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었고, 지혜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능력과 지혜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예언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우리게 주신 능력과 자신감을 키워 주는 사람입니다. 상실과 체념, 절망과 고통 때문에 하늘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힘차게 뛰어 오를 수 있도록 발판이 되어 주는 사람입니다. 탐욕과 허세, 교만과 분노로 그릇된 길로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정의와 평화, 기쁨과 행복의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자본의 힘에 이끌리는 사람들에게, 권력의 힘에 빠져드는 사람들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를, 희생과 봉사의 가치를 알려주는 사람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아모스 예언자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를 수 있도록 하느님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 주었던 예언자 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언자의 자세와 태도를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참된 예언자는 ‘무소유’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제자들은 많은 마귀들을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줄 수 있었습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사랑의 선교회’는 바로 이런 삶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꽃동네의 오웅진 신부님도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은총’이라고 하였습니다. 꽃동네는 우리 사회에 갈 곳 없는 분들이 마지막으로 의탁할 수 있는 사랑의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의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댓글 3

  • 2009년 7월 12일 오후 5:10

    아멘.

  • 2009년 7월 12일 오후 5:27

    아멘!

  • 2009년 7월 12일 오후 7:0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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