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背恩忘德’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은혜를 배반하고, 덕을 잃어버린다는 뜻입니다. 비슷한 말로 ‘물어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달라고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굴러온 돌이 주인 노릇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흔히 ‘짐승’만도 못하다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 성서 말씀의 주제는 이와 비슷한 내용입니다. 모세는 동족들을 괴롭히는 이집트 감독관을 죽였습니다. 동족들이 불쌍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모세는 히브리인들끼리 다투는 것을 보고 그러지 말라고 타이릅니다. 히브리인들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집트인을 죽이더니, 우리도 죽이려고 하느냐!’ 모세는 좋은 뜻으로 히브리인들을 도와주었지만, 히브리인들은 오히려 모세를 비난합니다. 모세는 결국 파라오의 눈을 피해서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3도시에 대해서 말을 하빈다. ‘코라진, 띠로, 가파르나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도시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도시의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하느님과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예전에 멸망한 소돔, 고모라에 내가 이와 같은 기적을 보여주었다면, 그 도시들은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아주 약한 모습으로 태어납니다.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오랜 동안 도움을 받아야만 스스로 생활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 갈 수 없습니다. 부모님은 우리를 길러주셨고, 보살펴 주셨습니다. 부모님께 사랑을 드리고, 부모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부모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스스로 성장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연을 통해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물과 공기는 우리가 만들지 않았어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너무나 풍부하기 때문에 우리는 물과 공기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잊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오히려 물과 공기를 오염시키고, 다른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을 만들기도 합니다.
모세는 자신을 고발하고, 비난했던 히브리인들을 위해서 다시 돌아오고,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와 ‘약속의 땅’을 향해 먼 여행을 떠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크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비난을 했지만 오랫동안 가파르나움에서 머무르셨고,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배은망덕’한 사람들까지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받고 신앙인이 되었다면 적어도 ‘배은망덕’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를 생각하며, 오늘 주어진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또 부족하지만, 넘어지고 실수하지만 나를 기다려 주시고, 사랑으로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을 따라, 우리도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을 품어주고, 감싸주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는 대지를 적시고, 많은 생명들을 풍요롭게 한 후에 다시 구름이 됩니다. 우리들 또한 하느님께로 났으니, 이웃을 위해 거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