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0주간 월요일

2009. 8. 17. 오전 5:05:49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름다운 성모상에 대한 축성식이 있었습니다. 우리들 모두의 정성이 함께한 성모님을 모실 수 있게 되어서 무엇보다도 기쁜 날이었습니다. 한 자매님께서 제게 이렇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성모상에 대한 축성이 맞는지, 봉헌이 맞는지 알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축성은 성물에 대한 사제의 기도를 말합니다. 고상, 성상, 묵주와 같은 성물에 대해서 사제가 기도를 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이 함께 하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제 단순한 물건이 축성을 통해서 기도할 수 있는 성물이 되는 것입니다. 성전은 축성과 봉헌이라는 말을 동시에 사용합니다. 축성은 하느님께 우리들이 기도 할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축복을 바라는 전례행위입니다. 그런가 하면 봉헌은 이제 우리들이 몇 년 동안 함께 노력해서 기도할 수 있는 성전을 신축하였으니 그 성전을 하느님께 바친다는 의미에서 봉헌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축성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해 주시는 사랑입니다. 봉헌은 우리들이 하느님께 우리들의 사랑과 정성을 바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키워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세상을 살아가는 바른 방법들을 알려 주셨습니다. 어느 때부터인지 모르지만 부모님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시고, 제가 용돈을 드리고 병원에도 모시고 가는 시간들이 왔습니다. 자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모님께서 이제 많이 연로하셨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찡한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 어느 시인이 ‘사모곡’이라는 글에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부모님께 효도를 하려고 하는데, 부모님은 자식들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효성이 지극한 자녀라고 해도, 부모님께서 주신 사랑의 절반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시려는 하느님의 마음과 수시로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하느님의 곁을 떠나려하는 사람들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들이 절망 중에 있을 때, 우리들이 힘들어 할 때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희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받았지만 곧 그 사랑을 잊어버리고, 다른 곳을 향해 눈길을 돌리는 잘못을 범하곤 합니다. 오늘의 제1독서도 바로 그런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죄가 진흥같이 붉어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해서 판관을 보내 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 청년은 예수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지 질문을 합니다. 복음을 읽어보면 청년은 아주 모범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계명을 잘 지켰고, 그릇된 길은 가지 않았던 청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예수님께 질문을 하고, 칭찬을 받을 거라는 기대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청년의 대답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계명들을 잘 지켰고, 나쁜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청년에게 또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다면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런 다음 나를 따라 오시오.’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슬퍼져서 예수님의 곁을 떠났다고 합니다.

모범생들은 열심히 살았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공부도 잘 했고, 법도 잘 지켰고, 성실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신학생들 중에도 이런 모범생들이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잘 하는 학생들입니다. 그런 모범생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더 큰 사명을 주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컴퓨터도, 내비게이션도 업그레이드를 시켜 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모범생이라 해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보다 큰 노력이 필요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댓글 1

  • 2009년 8월 18일 오전 8:4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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