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

2009. 6. 3. 오전 9: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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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 비가오고 천둥 벼락이 있었습니다. 뉴스에 보니까 ‘우박’도 내렸다고 합니다. 오늘도 비가 온다고 하니, 필요한 것은 ‘우산’이겠습니다. 어제 동창신부님들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들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지만, 잘 들어주지는 안았습니다. 지난주에 있었던 가정 성화특강에서의 ‘경청’이 생각났습니다.

오늘은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가정 성화 특강’을 요약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교구장이신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님께서는 작년과 올해의 교구 사목지침을 가정 성화로 정하셨습니다. 작년에는 ‘가정은 생명의 터전’이라고 정하셨고, 올해는 가정은 ‘신앙의 터전’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가정은 가장 기초가 되는 교회라고 하셨습니다.

성당에서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 중에서 더러는 가정에 소홀한 분들이 있습니다. 성당에서의 신앙과 가정에서의 신앙이 다른 분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람직한 신앙생활은 아닙니다. 가정에서 함께 모여 기도하고, 신앙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자녀들의 신앙을 키워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세상에서의 성공을 기대하기 때문에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기러기 엄마, 아빠가 되는 것은 기꺼이 감수하지만, 공부 때문에 성당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너무나 관대한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가족 모두가 신앙 안에서 일치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가정은 생명의 터전이라고 해서 우리가 장기를 기증하고, 헌혈을 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생명을 준다는 것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웃음, 친절은 지치고 힘든 가족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습니다. 계절이 바뀌어서 주변은 온통 생명이 넘쳐나는 푸른색으로 변했습니다. 황량한 겨울과 생명이 넘쳐나는 여름은 그저 약간의 온도차이가 있을 뿐이고, 해의 길이가 조금 늘어난 것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엄청난 자연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는 따뜻한 미소와 친절한 마음은 가족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의 중심은 ‘부부’여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 일치하고, 화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부가 하나가 될 때, 자녀들과의 관계도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부부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서 자녀와의 관계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 필요가 있고, 아내는 남편의 기를 살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가정에서 남편은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 주지 못하고, 아내는 남편의 자리를 지켜주지 못하곤 합니다.

저도 캐나다에서 동창신부와 2년 정도 함께 살았습니다. 처음 2달은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런데 함께 살면서 서로의 단점을 조금씩 보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제가 하는 말과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저도 친구가 하는 행동과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친구는 책임감이 강하며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편이었습니다. 저는 자유롭게 지내고 싶어 했고 큰 허물이 아니면 넘어가고 싶어 했습니다. 운전을 할 때도 저는 함께 대화를 나누고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했는데, 친구는 조용히 생각하면서 말없이 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함께 살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서로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성격을 지녔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남자들끼리도 함께 지내는 것이 어렵다면 성이 다른 남자와 여자가 가정을 이루는 것은 정말 힘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느끼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느낌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결혼을 한 부부가 서로의 좋은 감정을 유지하고, 사랑을 느끼는 것이 길면 3년 정도 간다고 합니다. 그 뒤로는 자녀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어서, 참아주면서 산다고 합니다. 이런 가정에서 참된 일치와 화합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이런 가정에서 자녀들이 부모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결심’이라고 합니다.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미래를 위해서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고,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피정을 가기로 결심하듯이, 부부도 서로 사랑하기로 결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엇 무엇 때문에 조건을 가지고 사랑하기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고 받아주는 사랑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조건을 가진 사랑은 그 조건이 채워지지 못하면 실망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실망은 이제 분노와 미움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부부도 그럼에도 사랑할 수 있도록 결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적으로 채워지는 재물과 능력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것도 필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부부는 서로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남자는 시각적이고 후각적이지만 말은 잘 못하고, 촉각적이지 못합니다. 여성은 말을 하면서도 다른 일들을 할 수 있지만 남성은 그렇지 못합니다. 남성은 문제가 생기면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가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여성은 문제가 생겼을 때 친한 사람과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해결하려 합니다.

삶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입니다. 부부가 가정 안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문제가 있음에도 부부는 서로에게 생명을 줄 수 있으며, 서로를 이해 할 수 있고, 도와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사람의 몸을 치유하기 위해서 오랜 동안 공부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생명을 치유하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의사는 환자를 만나면 치료하기 전에 먼저 환자의 말을 듣기 마련입니다. 환자의 이야기만 들어도 의사는 80%는 진찰을 할 수 있습니다. 마찬 가지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부가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어야 합니다. 듣기에는 비판적인 듣기와 공감적인 경청이 있습니다. 비판적으로 이야기를 들으면 상대방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언쟁이 될 수 있습니다. 공감적인 경청은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으며 생명을 줄 수 있습니다.

공감적인 경청은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면서 듣는 것이고, 잘 듣고 있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고, 상대방의 말에 긍정의 말을 함께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서에서 공감적인 경청을 하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토빗과 사라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며 하느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판적으로 듣고 예수님을 시험하려했던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감적인 경청을 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해 할 수 있게 생명을 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생명을 주는 말이 아니라면 옳은 말이라도 절제하고 자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생명을 주는 말이라면 공감적으로 잘 경청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가족들이라도 서로 다른 존재임을 인정하고 생명을 줄 수 있는 말을 해야 하겠습니다.

댓글 2

  • 2009년 6월 3일 오전 10:23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아멘!

  • 2009년 6월 3일 오후 8:46

    사랑은 서로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의 흠도 흠으로 보지 않고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 가족, 내가 만나는 이웃에게 하루에 한 가지의 칭찬거리를 찾아 칭찬해 보세요. 세상은 아름다워 집니다. 대화를 하다가 상대방의 말을 중간에 꺾지 마세요.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서로 존중하는 사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초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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