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오늘 이 미사는 나 수영 세례자 요한 아버님을 위한 장례미사입니다. 먼저 오늘 고인을 위한 장례미사에 함께 해 주신 추기경님과 신부님들 그리고 교우 여러분들에게 나 승구 신부와 고인의 가족을 대신해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작품 ‘템페스트’에서 인생을 폭풍우를 항해하는 배와 같다고 했습니다. 거센 파도와 사나운 바람, 세찬 폭우로 항해하는 배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폭풍우가 지나가고 배는 잔잔한 파도를 만나게 되듯이, 우리의 인생도 분노와 원망, 미움과 실망, 배신과 고통의 폭풍우를 만나게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인생의 폭풍우를 잠재우는 것은 용서와 화해라고 셰익스피어는 말하고 있습니다. 어제 입관 예식을 마치고 아버님을 위한 미사 중에 나 승구 신부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제 고인이 되신 아버지도 고맙고, 형, 누나, 매형, 형수들 모두 고맙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고인을 위해서 함께 자리를 해 준 모든 분들에게도 고맙다고 말을 했습니다. 고인이 되신 아버님도 이젠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용서와 화해로 인생의 폭풍우를 건넜으리라 생각합니다.
군대에 가서 남자는 철이 들고 어른이 된다고 합니다. 저는 1986년 1월에 군에 입대했습니다. 4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았습니다. 고참들이 내부 반에서 새로 들어온 신참에게 신고식을 시키곤 하였습니다. 신고식 중에 하나가 관물대 안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공간인 관물대 안에 들어가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겨우 어렵게 관물대에 들어가면 고참들은 노래를 시킵니다. 바로 ‘어머니 은혜’입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신임 병은 눈물을 흘리고, 내부 반에 있는 동료들도 마음이 찡해 지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 5월 8일에 또 다른 동창 신부의 모친께서 선종하셨습니다. 영안실에서 어머니를 위한미사를 봉헌하고, 어머니의 영정 앞에 성수를 뿌리면서 눈물을 흘리던 동창이 생각납니다. 이제 ‘어머니 은혜’를 불러드릴 부모님이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동창들이 하나 둘 생겨납니다. 며칠 전 어머니께서 제게 안부 전화를 하셨는데 저는 퉁명스럽게 받았습니다. 그래도 아직 어머니 은혜를 불러드릴 부모님이 계신데 그 고마움을 미처 몰랐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의 달’ 5월에 동창 신부들의 어머니와 아버님이 10일 차이를 두고 하느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성모님의 도우심과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천상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장례미사를 드리는 나 승구 신부의 부친 ‘나 수영 세례자 요한’ 아버님에 대해서 사실 저는 잘 모릅니다. 나 승구 신부가 사제가 되는 것에 대해서 반대를 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생의 종착점에 다다라서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대쪽 같은 성정이셨고, 10여 년 전 나 승구 신부의 어머니, 아버님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신 후에도 자녀들 힘들지 않게 하시려고 혼자서 생활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열매를 보면 뿌리를 알 수 있듯이 제가 비록 나 승구 신부의 아버님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나 승구 신부를 보면 아버님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창들 중에서 나 승구 신부는 참 따뜻한 마음을 지녔습니다.
정의로운 마음을 지녔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마음을 지녔습니다.
묻고 따지지 않는 순수한 마음을 지녔습니다.
저는 나 신부와 2년 가까이 함께 살았습니다. 함께 살면서 모든 굿은 일을 혼자서 하는 모습을 직접 보았습니다. 국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다고 늘 저를 위해서 국을 끓여 주던 친구였습니다. 공부하다가 출출해지면 제방에 와서 ‘라면먹자’고 하던 친구였습니다. 강한 자에게는 강하고, 약한 자들에게는 한없이 약해지는 친구였습니다. 이런 모든 좋은 점들은 나 승구 신부 혼자서 일구어 낸 것은 아닙니다. 좋은 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인이 되신 아버님은 나 승구 신부가 기댄 뿌리였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밭이었습니다.
나신부와 저는 낯선 땅 ‘토론토’에서 함께 살면서 좋은 이웃들을 만났습니다. 차를 빌려준 분들도 만났고, 김치를 만들어 주는 이웃도 만났습니다. 밑반찬을 가져다주는 분들도 만났고, 먼저 와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를 도와준 선배 사제도 만났습니다. 그런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토론토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같은 신앙’을 가진 분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 수영 세례자 요한 아버님은 조금 늦었지만 ‘신앙의 옷’을 입고 우리 중에는 아무도 가보지 못한 머나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10여 년 전 먼저 여행을 떠나셨던 어머니께서 예쁘게 단장을 하고 ‘세례자 요한’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천국에 오신 아버님을 맏이하실 것입니다. 천상의 많은 분들이 ‘세례자 요한’으로 새 옷을 입으신 아버님을 축하하며 따뜻하게 맞이하리라 생각합니다.
예수님께 사람들이 이렇게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입니까?” 그리고 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이고, 형제들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입니다.”
이제 나 승구 신부에게는 혈육으로 맺어진 어머니와 아버님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더 많은 부모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말라했던 동창신부는 더 많은 가족들과 함께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살아가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고인이 되신 나 수영 세례자 요한 아버님도 남아 있는 우리들에게 같은 말씀을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모든 이들이 이제 한 가족입니다.’
다신한번 고인을 위한 장례미사에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고인의 가족들을 대신해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주님! 나 수영 세례자 요한과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이 천상에서 영원한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