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성모님의 달 5월에 동창 신부님의 부친께서 어제 선종하셨습니다. 신앙을 갖지 않으셨던 동창 신부의 아버님은 마지막 순간에 세례를 받고 하느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아들이 신학교에 가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으셨던 아버님은 하느님께로 가는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면서 선종하셨습니다. 비록 신앙 안에서 함께 하신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올곧게 삶을 사셨던 동창 신부의 부친은 하느님 품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리라 믿습니다. 모든 일에 충실했고, 가난한 이들의 아픔과 고통에 늘 동참했던 친구를 보면 아버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로만하는 사랑이 아니라 온 몸으로 사랑을 실천했던 동창 신부를 보면 아버님의 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캐나다에서 함께 살았던 동창 신부를 잘 알기 때문에 아버님의 따뜻한 마음을 직접 보지는 않았어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시골의 공소에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저와 함께 간 신자 분들과 공소의 신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미사를 드리려고 하는데 전주 교구의 신부님과 수녀님들께서도 오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알지 못하지만 같은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함께 미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같은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금새 가족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참 넓고도 좁은 것이, 어제 만난 전주 교구의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은 또 제가 아는 분들과도 친분이 있으셨습니다. 세상은 5사람만 통하면 모든 사람을 알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실감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대단한 종교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돌아다니며 여러분의 예배소들을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들 모두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심어 주셨다고 이야기 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야기를 듣고 몇몇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이웃을 만나면, 우리는 하느님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환한 미소는 절망에 빠져있는 이들에게는 커다란 위로와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고 기다리면 급한 일이 있는 사람이 함께 타고 갈 수도 있습니다. 먼저 가겠다고 신호를 보내는 사람에게 차선을 양보하면 그 사람은 지금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가족의 마지막 순간을 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는 분이 함께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성령, 위로의 성령, 굳셈의 성령, 지식의 성령, 지혜의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따뜻함과 온유함이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전해 질 수 있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