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 ‘단내성지’엘 다녀왔습니다. 성지에서 사목하시는 신부님께서 순례를 온 우리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고, 좋은 말씀으로 영적인 양식을 주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특별한 선물이라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마지막 말씀을 읽어 주셨습니다.
“새 천년의 문을 열어 놓고
이제 나는 주님께 나를 바칩니다.
이제 새 천년의 시작은 여러분이 해야 합니다.
나는 너무 많은 일을 했습니다.
많은 고통도 겪었습니다.
쉴 시간이 없었습니다.
늘 기도했습니다.
손에서 묵주를 놓은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서 등을 돌리고 싶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고독 속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묵묵히 실천하느라 고통스러웠습니다.
이제 그 십자가를 여러분에게 넘기고 나는 쉬러 갑니다.
지금은 쉬고 싶습니다.
너무 힘들고 외로웠습니다.
나에게는 친구가 필요했습니다.
즐기고 싶었고 울고 싶기도 했으며 방황도 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이제 그대들 곁을 떠나지만
내가 하던 일은 하느님의 이끄심에 의해 계속될 것입니다.
이제 모든 짐을 벗어 버리고
편히 주님께 갈 수 있어서 나는 행복합니다.”
4년 전 교황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입니다. 저는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라는 말만 기억했습니다. 어제 신부님께서는 교황의 직책이 얼마나 힘들고 고독한 자리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제로 살아간다는 것,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도 힘들고 고독하며, 외로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것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 2월에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마지막 말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도 더 많은 뜻이 그 안에 담겨져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도 많은 시간 불면증에 시달리셨다고 합니다. 누구에게 상의 할 수 없는 일들 때문에 기도해야 했고, 고독한 날들을 혼자 보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세상에서의 십자가를 내어 놓으실 때,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도 ‘고마움’을 말하고 싶어 하셨고, 사랑만이 십자가와 고독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어제 성지에서 신부님께서는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레지오 단원들의 첫째가는 직무는 무엇입니까? 어떤 분은 출석이라고 답을 하셨고, 어떤 분은 선교라고 답을 하셨고, 어떤 분은 사랑이라고 답을 하셨습니다. 또 어떤 분은 기도라고 답을 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모든 답에 점수를 주시면서 가장 정확한 대답은 ‘자기성화’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성화되면 누가 머라고 하지 않아도 출석을 하고, 자신이 성화되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선교하며, 자신이 성화되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기도 할 수 있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자신은 성화되지 않았으면서 남을 성화시키려고 하는 분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의지와 뜻이 먼저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분들을 볼 때도 있습니다.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곧 지치게 됩니다. 힘이 빠지면 다른 사람들 때문에 신앙이 식어버립니다. 즐거웠던 일들도 시들해지고, 성당에 나오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재미가 없어집니다. 자신의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성화된 신앙을 가진 사람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기도할 수 있으며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성화시킬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주님 곁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가전제품도 전원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그저 고철에 지나지 않습니다. 전원이 연결되어야만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냉장고도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연결될 때, 주님 곁에 머무를 때 성화될 수 있습니다. 오늘 응송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너희는 알아라, 주님은 하느님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 그분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 떼라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성화된 신앙인은 박해를 받을 수 있고, 고독할 수 있으며, 십자가를 지고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우리를 살리는 길이고, 그 길이 영광과 부활의 길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