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마르코 복음 사가 축일입니다. 전임신부이신 윤 신부님의 축일이기도 합니다. 서소문 순교성지에서 순교자들의 영성을 전하시는 윤 신부님께서 영, 육간에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은 어제 목동 성당에서 들었던 강의를 요약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의 얼굴도 나이를 먹으면 노화에 이르게 됩니다. 어떤 곳이 가장 먼저 노화가 될 가요?
눈이 가장 먼저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 감을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현대인들은 텔레비전을 보고, 컴퓨터 모니터를 보기 때문에 눈이 더욱 피로해 진다고 합니다. 안보아도 될 것들을 너무 많이 본다는 뜻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각막을 기증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를 많이 하고, 기도 중에 눈을 많이 감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음은 치아가 노화된다고 합니다. 물론 많이 씹기 때문입니다. 음식만 씹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험담을 하고, 뒤에서 욕을 하면서 우리들의 입을 가만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험담과, 시기와 질투의 말들은 나의 이를 늙게 만드는 것이니,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귀라고 합니다. 귀는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 싱싱하다고 합니다. 우리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이 의식이 없어도 귀는 열려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숨이 넘어갔어도 병자성사를 드리기도 합니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부자가 된 젊은이가 자신이 부자가 된 비결을 말했다고 합니다. 자신은 지갑을 열어 돈을 쓸 때, 늘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돈을 쓰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니 돈 들도 기분이 좋아서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우리는 돈을 쓸 때, 아까워하면서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무금을 낼 때도, 헌금을 할 때도, 누군가를 도울 때도 아까워하면서 돈을 쓰면 돈들도 다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린다고 합니다. 우리는 돈을 쓸 때도 감사하면서 기쁘게 써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돈들도 기분이 좋아져서 다시 돌아 올 테니까요.
현실을 바라보며,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래를 바라보면서 현실을 준비하는 사람은 성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의 현실 때문에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현실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를 성공에로 이끌어 준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해에 태풍이 심하게 불어서 과수원의 사과들이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과수원의 농부들은 모두 낙심하고, 걱정을 했는데, 한 농부는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10%의 사과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름을 붙여서 팔았다고 합니다. ‘떨어지지 않는 사과’ 그 사과는 10배의 가격을 더 붙여서 팔았습니다. 그해의 수험생들은 ‘떨어지지 않는 사과’를 비싼 가격에도 사서 먹었다고 합니다. 떨어진 90%의 사과를 보는 것이 아니라, 떨어지지 않았던 10%의 사과를 보았던 것입니다. 희망은 우리가 죽기 전까지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드실 때 ‘숨’을 불어 넣어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희망이라고 합니다.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 노인과 바다’와 같은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아름다운 노래로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카펜터스도 ‘Yesterday once more'와 같은 노래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은 모두 불행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들이 받았던 찬사와 사랑이 사라질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이 지선이라는 학생은 온 몸에 3도 화상을 입을 정도의 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날 때부터 손가락이 3개 밖에 없던 현이라는 학생도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고통과 불의의 사고까지도 감사하게 여겼고, 하느님께서 그런 자신들을 통해서도 역사하신다고 믿었습니다. 장애와, 고통은 그들에게는 하느님께로 갈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가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오늘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으십시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고, 하느님 오른 편에 계시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마르코 복음 사가의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 모두 십자가의 영성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