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는 가톨릭 신문사에서 신문 홍보를 위해서 오셨습니다.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면서 생각을 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편안하게, 기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오셨고,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는 다른 신부님들께서 하시는 강의와 강론을 들을 기회가 많았습니다. 새로운 것을 듣고 배울 때, 영적으로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니코데모’는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이었습니다. 최고 의회는 이스라엘의 입법과 사법을 통괄하는 최고 기관으로 ‘산헤드린’이라 합니다. 최고 의회 의원은 많은 것을 알아야 하고, 경험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 니코데모도 예수님을 만나면서 새로운 것을 배웠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의 의미,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서 니코데모의 삶은 변화되었고, 세상의 것, 육적인 것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매주일 발행되는 주보에는 교구의 소식이 있습니다. 교구에서는 다양한 모임과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본당에서도 복음화학교, 성서공부, 피정과 같은 교육의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런 교육의 자리를 자주 찾아가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도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바오로 사도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오늘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기쁜 소식을 전하기전에, 장애인들은 ‘죄인’이었습니다. 눈이 먼 사람, 걷지 못하는 사람, 중풍에 걸린 사람,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은 죄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공동체는 그들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죄인으로 대하며 멸시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애인들을 치유시켜 주시면서 그들을 죄인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이 드러나기 위해 장애인들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육체적으로 장애가 있을지라도,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영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이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가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장애인들을 보면 동네 아이들과 함께 무시하고 조롱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과 무시를 조금씩 개선하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 시설들을 만들고 있으며, 장애인들을 위한 고용을 늘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것들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교회는 장애인들이 하느님 구원 계획이 드러나는 표징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육체적인 장애는 우리가 하느님께로 가는데 장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사도들은 담대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 저들의 위협을 보시고, 주님의 종들이 주님의 말씀을 아주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는 손을 뻗으시어 병자들을 고치시고,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징과 이적들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하였다고 놀라지 마라.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주님의 사랑이 가득한 월요일 되시기 바랍니다.
